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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34] 타락한 레위인으로 인한 비극
운영자 2018-09-27 추천 0 댓글 0 조회 772
[성경본문] 사사기19:16-30 개역개정

16.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타락한 레위인으로 인한 비극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첫 인간 아담과 하와에게 금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명령이었어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하나님은 여전히 명령자가 되시며 인간은 창조주께 순종하므로 그 관계 속에서 창조세계의 샬롬의 상태가 유지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뱀의 모습으로 등장한 사단의 꼬임에 빠져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먹지 말라고 분명히 명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창조세계는 더 이상, 샬롬의 상태, 즉 질서와 평강의 상태가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이 인간의 죄로 인하여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창조주와 인간과의 관계가 두절되니 그때부터 인간의 심성에, 영혼에, 악한 요소인 罪性(죄성)이 아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이 죄성으로 인해 타나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맘에 들지 않을 때에 나타나는 분노입니다. 이 분노의 성품은 형인 카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살인 사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그 규모가 커지면서 전쟁으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의 다양한 이유의 살인과 더 큰 규모의 국가 간의 전쟁의 기원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둘째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결혼의 모습은 사랑과 존중이었습니다. 부부간에 다툼도 없고,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는 것도 없고, 녀 간에 인격적인 면에서 차별도 없었습니다. 동등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변하였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힘이 세다고 하여 강압적으로 여자를 다스렸습니다. 이 모습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3:16) 이 모습은 인간타락의 결과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힘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남편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억울해도 순종해야 했습니다. 죄로 결과로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했어요. 한 여자로 만족하지 못하면 둘째 부인을 얻고 셋째 부인을 얻고 또한 오늘 성경 본문에 등장하는 레위사람처럼 첩까지 두었습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창조의 원리를 깨고 남자는 여자를 재산으로 취급했습니다. 사람으로 대한 것이 아니에요. 여자를 재산으로 물건처럼 취급했습니다. 이것이 죄악된 고대사회의 문화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애굽기 20:17)

이웃집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실 때에 그 소유들은 곧 이웃의 재산을 일컫는 것입니다. 네 이웃의 집, 남종, 여종, , 나귀....” 그와 같은 소유물의 수준에서 네 이웃의 아내를 하나의 소유물로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여자를 인격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하나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성경본문에서 자신의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어주는 이 레위사람의 행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의 첩은 그 위기의 순간 하나의 소유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인격체로 본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 레위사람과 일행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집에 들여 유숙하게 했던 베냐민 자손, 이 노인이 그 상황에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딸을 또 그 불량배들에게 내어주는 행위가 나옵니다.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성경본문 19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현 시대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네팔과 같은 나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타망족 중에 자신의 어린 딸을 소유물로 알아 돈을 받고 파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을 짓는데 큰 딸을 팔아서는 벽을 쌓고 둘째딸을 팔아서는 지붕을 씌웁니다. 그렇게 해서 팔려간 딸들의 인생은 너무나 기구하고 비참합니다. 멀리 인도나라까지 팔려갑니다. 잔심부름꾼이 되기고 하고 더 자라면 성적 노예가 됩니다. 너무나 비인간적인 가슴 아픈 얘기 잖아요?

 

그래서 저와 아내가 어떻게 도울 수 없을까하여 버려진 여자아이들 15명을 딸로 키웠던 것입니다. 지금은 다 성장해서 다들 잘 살고 있습니다. 리빙스톤 학교에 교사로 2명이 일하고 있고, 그리고 현재 인도네시아에 네 명이 전액장학금으로 유학 가 있는데 저와 아내가 계속 생활비와 용돈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또 안정된 직장을 갖겠지요.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전하는 하나님의 딸들이 될 것입니다.

 

여자를 물건처럼 소유물로 취급하고 대우하는 모습, 남존여비 사상, 이 모습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므로 얻게 된 죄의 결과로 기인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참 대단한 나라입니다. 한국의 여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셔야 해요. 몇 년 전에 통계에 보니 한국여성의 여자로써의 만족도가 세계 17위라고 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여권신장이 성장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여자들이 워낙 쎄요. 겁날 정도입니다. 나이 40만 넘어가도 재정권을 꽉 잡고 있습니다. 남편이 용돈 받으려면 아내에게 잘 보여야 해요아내가 시댁을 잘 섬기게 하려면 남편이 평소에 잘해야 해요. 이사 갈 때에는 강아지를 잘 품에 안고 있어야 한 대요. 버리고 가지 말도록. 강아지가 아니라 남편을 버리고 가지 않도록 강아지라도 꼭 안고 있어야 같이 데리고 간다는 우스운 얘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남존여비의 죄악된 풍습에 우리가 분개합니다. 이 죄성에서 비롯된 잘못된 모습이 오늘 성경본문에 보니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27절과 2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이 레위인의 첩이 불량배들의 몹쓸 짓에 의해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가 분개합니다. 첫째는 첩을 내어준 이 레위사람, 그리고 또한 딸을 내어준 노인에 대해 분개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하나님을 거역해서 비롯된 죄성의 결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시대가 그렇게 악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악한 죄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우리가 또 분개하는 것은 바로 이 불량배들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과 같은 기브아입니다. 저들은 아주 텃세가 심했는데 그 지역에 들어온 나그네를 발견하면 가만 두지를 아니했습니다. 이 불량배들은 소위 남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밤에 찾아와 이 레위사람을 내 놓으라 소리 질러댑니다. 몹쓸 짓을 하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인간의 타락한 이후 나타난 죄의 결과입니다.

로마서에 보면 이는 순리가 아닌 역리 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성경은 로마서 128절에 말씀하기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남색하는 역리의 모습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끊이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오늘날의 일만이 아니에요. 과거 풍요를 자랑하던 로마시대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로마의 황제 15명 중에 14명이 동성애자였다고 역사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철학자들이 황제를 교육시킵니다. 그런데 그 철학자들 중에 대부분이 또한 동성연애자들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성경은 그 행위의 비참한 결과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27절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로마의 역사학자인 타키투스는 로마시대 황제들의 최고의 고민은 그 역리로 쓴 결과로 얻는 성병을 어떻게 치료하느냐 하는 것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기독교를 핍박하던 헤롯왕이 충이 먹어 죽었다고, 벌레가 먹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성경학자들은 이 병이 성병, 즉 에이즈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로마황제들처럼 성적으로 문란한 죄악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죄의 한 부분일 뿐이에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죄악이 있습니까? 얼마나 추합니까? 얼마나 악합니까?

 

성도 여러분, 어떻게 하면 이러한 죄성을 없앨 수 있을까요? 인간의 내면에 피 속에 흐르는 죄성, 대대손손 이어지는 이 악한 본성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이성으로, 노력으로, 교육과 훈련으로 인간의 죄성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까요? 그러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죄악된 모습들의 요인에 대해서 분명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단언합니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1:28)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과 짝한 자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성경본문의 레위인이 그러한 것입니다. 제사장으로서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육신의 정욕에 눈이 어두웠습니다. 규정을 어기고 첩을 들였습니다. 안식일이 다가오니 제사장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성소가 있는 에브라임으로 돌아가지만 이는 이중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니 이와 같은 인간의 죄성을 도말하는 것은, 내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가능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죄성을 도말하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가 달려 돌아가시면서 이 죄를 도말하셨습니다.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죄성을 잘라 낼 강력한 힘을 주십니다.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이 새벽에 우리는 감사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계시고 나의 삶의 주가 되시니 감사합니다. 에덴동산의 타락된 모습이 여전히 이 세상에 관영하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고 새 삶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이 새벽에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여전히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므로 죄 속에 살아가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저들이 돌아오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그 일에 저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일을 위하여 간구하오니 믿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의 권세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죄악의 어둠이 물러가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심령마다 임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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