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사사기 강해 33] 레위인의(성직자) 성적 타락과 그 결과
운영자 2018-09-26 추천 0 댓글 0 조회 1192
[성경본문] 사사기19:1-15 개역개정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3. 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4.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그가 삼 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5. 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의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고 그대의 기력을 돋운 후에 그대의 길을 가라 하니라

6.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하니

7. 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그의 장인의 간청으로 거기서 다시 유숙하더니

8.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돋우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9. 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

10.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12.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 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레위인의(성직자) 성적 타락과 그 결과

 

시대적으로 볼 때에 가장 죄악이 관영할 때가 언제인가하면 도덕적으로 가장 거룩해야 할 성직자들이 타락했을 때였습니다. 성직자들이 타락하게 되는 사회적 배경을 보면 성직자들이 세상적인 부와 권세를 가졌을 때에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고려시대 숭불정책으로 나라를 다스렸을 때에 불교의 승려들이 정치적으로 권세를 얻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는 도덕적인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승려들은 교단적 차원에서 땅을 소유하였고 노비를 부렸습니다. 성적인 타락도 자연적으로 따라왔습니다.

 

서양에서는 과거 로마천주교에서 성직자의 타락이 심했습니다. 윌리엄 캐논이라는 역사학자에 의하면 60년 동안 교황권은 여성들의 앞치마에서 놀아났다. 교태와 유혹을 통해 매춘부 데오드라와 마로지아는 로마를 지배했을 뿐 아니라 서방 교회를 흔들어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황들은 정치권력과 결탁하였고 교황직도 돈으로 사고, 파는 추악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교황 이노센트 8세는 공개적으로 16명의 사생아아를 둔 아버지로 알려졌습니다. 이노센트8세가 죽자 로드리고 볼기아는 추기경들에게 뇌물을 먹여서 자신을 선출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14명의 첩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1510년에 출판된 윌리엄 멜톤의 설교는 이러한 모습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제들의 타락은 곧 성도들의 타락을 가져왔으며 공동체 전체의 타락을 부추겼습니다. 중세의 사제들의 모습이 그러하였으니 사회는 죄악이 관영하였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배울 것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불신이 가득했습니다. 성직자가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영적인 자신이 없기에 독재를 통하여 권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중세 교회와 사제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어둠의 그림자를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로마 천주교안에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에 관한 이슈는 끊임없는 문제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는 어떻습니까? 몇 년 전에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모교회, 모목사의 성추행 문제가 사회에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교회는 대사회적으로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교회의 이미지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도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런가하면 영등포에 있는 한 이단교회에 아무개 씨는 성도를 대상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성적인 범죄로 인해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성직자로 인정받고 인식되고 있는 자들 중에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은 그마 만큼 사회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썩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악한 기운 앞에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단이 역사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며 깨어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의 얘기는 같은 주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기는 삼손 얘기를 마지막으로 사사의 활약을 끝내고 17장부터는 그 시대의 문화적 영적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이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아니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할 제사장이 타락하므로 빚어지는 일들이 계속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는 부유한 사람 미가의 얘기를 어제 마쳤습니다. 미가는 부유하여 집안에 개인적인 신당을 만들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신당에 고용된 레위 청년 제사장이 그의 영적인 잘못을 지적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물질에 눈이 어두워 미가의 신당의 우상을 제거하지 아니했습니다. 이 제사장의 잘못은 거기에서 마쳐진 것이 아니었어요.

 

이 레위 청년 제사장은 거주지를 찾고자 그 지역을 정탐하러 온 단 지파의 다섯명의 정탐군을 돕습니다. 이어 물질과 명예가 주어지는 단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달라는 저들의 제안에 현혹됩니다. 제사장으로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삯군이었습니다. 가장 큰 잘못은 물질에 눈이 어두워 버려야 할 우상 신상을 제거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이 레위청년 제사장을 고용한 단 지파는 영적으로 똑 바로 서지 못하고 그 열두지파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비극의 역사를 맞이합니다.

 

이 레위청년 제사장이 물질에 현혹되었다면 오늘 본문의 레위 사람은 여자 문제로 타락하였습니다. 물질과 성적인 유혹, 거기에 연루되고 무너진 제사장의 모습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당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한 없이 헤이해진 사사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영적인 일을 하는 성직자가 타락하면, 단체적으로는 교회가 영적으로 제대로 서 있지 못하면 그 사회는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개인도 가정도 무너집니다. 그러니 이 새벽에도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성경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한 레위 사람이 첩을 맞이하였다고 했습니다. 타락한 레위인의 모습입니다. 율법에서는 레위인이나 제사장의 혼인에 대하여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직계급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레위인들이 반드시 처녀와 결혼할 것을 규정했고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제사장이 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첩이란 부인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부인 두 번째 부인하고 또 다른 존재입니다. 어떠한 자격도 권리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부가 준비해야 할 지참금을 주고 합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저 집안에서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조건으로 하나의 식솔 또는 종의 모습과 같습니다.

 

레위인이 첩을 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보니 이 여자가 다른 남자와 행음을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레위인의 한 사람으로써 그 계기를 통해 완전히 그 잘못을 끊었어야 했습니다. 그 계기를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종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욕을 끊지 못했습니다. 3절에 보니 하인 한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끌고 그 여자의 집에 찾아갑니다.

 

그러니 그 장인 된 사람이 이 레위인을 극진히 대접을 합니다. 삼일동안 먹고 마시고 쉬게 합니다. 바로 떠나지 않게 합니다. 버림받아야 마땅한 음행을 하고 도망쳐 온 첩밖에 안 되는 딸을 다시금 데려가려고 왔으니 지참금도 주지 않은 자신의 딸을 맡겨야 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날이 되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저가 돌아가고자 합니다. 왜 이때에 가고자 하는가? 성경신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저가 레위인으로써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성소에서 해야 할 의무,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먹고 마시고 쉬고 하는 일이 중지하고자 합니다. 나름 책임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은 하나님 앞에 이미 잘못된 모습 아니겠습니까? 실생활은 음란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는데 안식일이라고 남들 앞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주의 일을 한다고 하니 이 사람은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적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장인의 집을 떠나 에브라임으로 가는 길에 위기가 발생합니다. 유다 베들레헴은 남쪽에 있고 에브라임 산지는 북쪽에 있습니다. 이 거리는 걸어서 하루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중간에 어디에선가 유숙해야 합니다. 중간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성경에는 여부스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옛 지명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때까지 그곳에 살고 있는 여부스 족을 쫓아내기 못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여부스 족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레위인은 생각했습니다. 여부스 족이 가득한 그곳에 머물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이스라엘인들이 살고 있는 곳 즉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기브아는 당시에 소돔과 고모라 성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동성애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습니다. 완전히 잘 못 들어간 것입니다.

저녁이 되고 밤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나그네를 재워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곳은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이니 잘못 나그네를 들였다가는 그 동네 깡패와 같은 자들에게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레위인 자체가 그들 중에 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레위인으로써 성소에서 수종드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어기며 첩을 들였습니다. 이 모습은 그 시대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인의 도덕성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도덕성을 나타내는 지표였습니다. 이 레위인은 자신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서 안식일 전에 에브라임 산지로 가고자 하지만 사생활은 하나님 앞에 심판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예배의 수종자들을 세웁니다. 집례자로 말씀전하는 자로 성가대원으로 성경봉독 위원으로, 기도위원과 헌금위원과 안내위원으로 또한 밖에서는 영접하는 사람들과 주차위원 봉사위원들 이후에는 성경공부와 식사봉사자들이 함께 수종듭니다. 모두가 다 레위인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우는 영적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배의 수종자로써 본분을 지키라

말씀을 전하는 자로써 위선자가 되지 말라” 

끊어버려야 할 것을 끊고 성결한 모습으로 예배에 수종들라” 

지은 죄가 있다면 철정하게 회개하고 예배에 수종들라

 

저는 이와 같은 모습으로 한국교회가 다시 똑바로 서야 함을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해주시므로 교회가 든든히 서고 이 깜깜한 세상,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너무 어두워, 그 모습은 마치 깜깜한 밤바다에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몰라 유리하는 영혼들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는 등대불과 같은 교회로 서는 데에 귀하게 쓰임 받는 교회 성도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사사기 강해 34] 타락한 레위인으로 인한 비극 운영자 2018.09.27 0 772
다음글 [사사기 강해 32] 正道(정도)를 택하라 운영자 2018.09.25 0 646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49
  • Total202,473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