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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강해 16] 내 영혼의 피난처: 도피성
운영자 2018-06-27 추천 0 댓글 0 조회 1120
[성경본문] 여호수아20:1-9 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 영혼의 피난처: 도피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파별로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일을 다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명하십니다. 도피성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 는 일찍이 모세에게 주어졌던 명령이었어요. 순종의 사람 여호수아는 순종합니다. 각 지파의 중심지역 여섯 군데에 도피성을 만들었습니다.

 

도피성이란 글자의 뜻대로 피하는 곳입니다. 피난처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누가 피하는 곳인가 하면 본의 아니게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가 그 가족들로부터 복수를 당하기 전에 피신하는 곳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과실치사가 발생한 경우를 말합니다.

 

구약시대에 근동지방의 국가들은 동태복수법에 근거하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였습니다. 동태복수법이 무엇인가하면 당한대로 갚는다는 법 실행입니다. 예를 들어 남의 집 소를 훔쳤으면 그 훔친 자의 소를 가져올 수 있으며, 상대방이 자신의 가족을 때렸으면 그 때린 자의 가족을 그마 만큼 때려도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당한만큼 그에 상응하는 응징이나, 응징을 하지 못할 상황이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도 갚지 못하면 피해를 준 집의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는 살인의 경우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5절에 보시면 피의 보복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가족 중에 누가 한 사람이 살해를 당하면 반드시 죽인 자를 찾아 죽여야 했습니다. 이 일로 죽은 자의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복수의 허락을 받고 살인자를 찾아 죽여야 했고, 그것이 합법적인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이 피의 보복자는 죽임을 당한 자가 받을 유산을 대신 받을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시대에도 그런 법을 적용하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필리핀 산지족인 아이타 부족 가운데 복음을 전할 적에 저들도 이 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들은 40여 가정이 씨족을 형성하고 살고 있는데 가족 중에 누군가가 살해를 당하면 반드시 복수해야 그 영혼이 자유함을 입고 그 영혼의 창조주인 아뽀 마말야리 에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복수할 자가 멀리 도망쳐서 잡을 수 없으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하는 자는 보통 그 지역에 새로운 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찾은 한 선교사가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타 부족 간에 살인사건이 나면 절대 산속에 출입을 삼가라는 조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고대 근동지방의 동태복수법이라는 제도입니다.

구약성경에도 모세의 율법에 그런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19:21). 그러나 살인의 의도가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하였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모세에게 알려 주셨던 것이에요. 거기에는 동태복수법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복수에 복수가 반복되는 피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점이 고대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성경의 율법이었습니다. 그 율법에는 인간생명존중 사상과 인권의식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피성을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성경의 본문의 말씀대로 운영되었습니다. 3절입니다.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안 그러면 피의 보복자에게 잡혀 죽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면 도피성의 문 어귀에서 그 성읍의 장로들이 그 사연을 듣고 타당하면 그 안에 들어가 피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피의 보복자가 그 사실을 알고 쫓아와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야말로 안전한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되었을 때 그 피고는 살해당한 자의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넘기어져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즉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는 도피성에 피한다 해도 그 죄 값을 면치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Matthew Henry).

 

도피성으로 피난한 사람은 그 안에서 살아야 했어요. 밖에 나갈 수 없어요. 자유가 그리워 몰래 나가면 피의 보복자에 의해 잡혀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대제사장이 사고로 또는 연로해서 죽게 되면, 자유의 몸이 되어 자기성읍,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왜 대제사장이 죽으면 살인자가 자유의 몸이 될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심오한 속죄사상을 발견합니다.

 

대제사장은 죄와 죄의 속죄, 즉 범한 죄를 용서함에 있어서,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죽음은 살인자의 살인죄를 속죄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어요. 살인자의 죄를 대신하여 대제사장이 죽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 속죄사상은 사람들의 개인적으로 범한 죄를 짐승에 전가하고 그 짐승을 죽여 그 피를 제단에 뿌려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던 모습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러니 국가적, 민족적 죄는 영적인 면에서 민족의 대표자가 된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 죄인들이 용서함을 받는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구약의 도피성 법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과 속죄하심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고 죄의 사슬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하늘나라 천국본향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오늘 성경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도피성의 얘기를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피난처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도피성이 되심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련과 극복을 위한 찬송 중에, 337장이죠.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가사가 이러합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인생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도 않습니다. 선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어릴적 부터 양심이 있는 모든 자의 소원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다양한 상황에 연루됩니다. 양심에 꺼리는 상황이 이 세상에는 참 많이도 있습니다.

 

원래 세상이 악한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후로 세상이란 원래 사단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구조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세상 삶이라는 게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세상적인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이 세상입니다. 이 그 유혹을 완전히 배제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므로 그 속에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도 조금씩 양심이 죽어갑니다. 적당히 하면 된다고 사단은 속삭입니다. 적당히 거짓말하고,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챙기면 된다고 하는 생각이 마음을 어둡게 하고, 이러한 일이 반복이 되다보면 세상적 기준이 상식이 됩니다.

 

문제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거룩이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이 내주하는 심령은 언제고 하나님의 성품을 추구하게 되어있는데 거스려 행하게 되니 마음에 평강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한편 이것은 좋은 것입니다. 여전히 선한 양심이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마치 우리 신체에 상처가 생기면 온몸이 반응하듯이 양심이 아픕니다. 문제는 이 죽어가는 거룩성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는가 말입니다. 이미 죄로 인해 시작된 마음의 근심, 염려는 상처가 되고, 감염이 되어 거룩성은 점점 죽어갑니다. 마치 간경화의 모습이죠. 굳어집니다. 본래의 기능이 사라집니다. 이 죄로 인해 죽어가는 양심을 어떻게 살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도피성은 약속을 변개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특별히 보내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은신하고 안식해야 할 사람들을 위하여 참으로 놀라운 위로와 평안을 제공하여 주십니다.

 

넬라 판타지아 배경음악으로 유명한 미션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포르투칼의 용병이자 노예상인 멘도자는 자신의 아내와 동생의 불륜을 목격하고 그의 동생을 죽입니다. 결투였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무죄라고 하지만,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수도원을 찾고 거기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립니다. 그는 거기에서 가브리엘 신부를 만납니다. 그때에 가브리엘 신부가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 당신은 죄를 지었다. 속죄의 길을 택할 용기조차 없는 건가?” 하면서 노예로 여기고 있는 산지족을 돕는 사역으로 초대를 합니다.

 

멘도자는 여전히 죄책감에서 심령의 평안이 없습니다. 노예 사냥꾼으로서 또한 동생을 죽인 죄책감을 없애고자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장애물을 메고 이구아수 폭포의 절벽을 고집스럽게 기어오르는 일을 반복합니다. 자신의 죄의식을 상징하는 고철 덩어리를 잔뜩 넣은 그물 망태를 끌고 절벽을 기어올라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노예 사냥꾼으로서 속죄하는 멘도자에게 관대한 과라니 족은 그가 짊어졌던 망태의 밧줄을 끊어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는 저들의 관대함 앞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을 합니다. 용서가 무엇인가를 배우며 죄책감의 사슬을 벗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범해서 마음에 평강을 잃었습니까? 죄책감이 여러분을 사슬처럼 얽어매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도피성인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진정한 영혼의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오늘 소개되고 있는 여섯 곳의 도피성의 이름을 보면 이 도피성이 예수님의 성품임을 알게 됩니다.

1) 게데스(거룩한 곳) - 추한 것을 위한 도피처

2) 세겜(짐 진 자를 쉬게 하는 곳) - 지친 자의 도피처

3) 헤브론(친교) - 나그네를 위한 도피처

4) 베셀(강한 성) - 무력한 자의 도피처

5) 라못(고귀하게 되는 곳) - 절망자를 위한 도피성

6) 골란(선별된 곳)-시험 당한 자들의 도피성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완전하고 안전한 피난처가 이 세상에서는 그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어주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전과 위로가 있을 뿐입니다.

 

관대히 용서하여 주시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로 늘 보호하여 주시는 공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 회개하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범한 어떤 죄도 주께서는 사랑으로 덮어 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자비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만이 가능한 이 용서하심을 통해, 진정한 안식과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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