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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41] 응답받는 기도의 원리
운영자 2018-05-16 추천 0 댓글 0 조회 1021
[성경본문] 출애굽기33:12-23 개역개정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응답받는 기도의 원리

 

우리의 기도가 항상 응답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바람 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마침내 모세의 기도가 완전히 응답되고 해피엔딩을 마쳐지게 되는 경우를 보고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숭배, 금송아지로 우상을 만들고 이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원래의 계획대로 완전히 진멸하시지 아니하시고 그 마음을 바꿔 이제는 이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겠다 약속하시고 어제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었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지 않겠다 하신 하나님께서 본문 14절에 보니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노를 푸시고 모세를 도우시기로 생각을 바꾸신 것은, 분명히 모세의 강청의 기도로 인함이었습니다.

 

저는 금송아지 사건과 하나님의 진노와 그리고 이를 중재하는 자, 모세의 기도 그리고 상황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보면서 기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기도와 연관하여 제 마음에 늘 갖고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기도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원래계획을 바꾸실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셔서 계획을 세우시면 틀림이 없고 확실하신데...., 그대로 하셔도 되는데, 그런데 사람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정성으로 지성으로 간청을 하면 원래의 계획을 바꾸시면서 까지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주제는 너무 방대합니다. 신비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소통의 방편입니다. 일종의 대화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만일 기도가 없다면 그리고 기도가 응답이 없다면 기도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며 그렇게 되면 어느 종교처럼 신의 뜻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쩌랴~!” 그냥 주어진 인생은 그저 신의 운명으로 맡기고 사는 모습이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게 하는 과정에서 필수조건이 됩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기도하는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 라고 약속했을 때에, 그 뜻은 역으로 생각하면 기도하지 않는 백성은 망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가만히 있으면 망하고 말 것인데, 기도하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지난 3일에 걸쳐 우리는 금송아지 사건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이 사건을 토대로 모세의 기도 응답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 과정을 통해 영적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배우는 기도의 교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되 여전히 주의 뜻대로 행하십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겠다 바로 3210절 말씀이죠. 놀란 모세가 첫 번째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3212절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뜻을 돌이키사 라고 모세는 강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강청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진멸하는 계획을 바꾸셨습니다. 32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그러나 말씀을 자세히 보면 모두가 다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인 중에 삼천 명이 죽습니다. 전멸은 면했습니다. 그러나 삼천명이 칼에 베임을 당하고 죽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죄를 다스리심에 있어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뜻에서 이와 같이 그 뜻을 보이셨습니다. 그냥 다 용서하시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죄를 묵인해주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정의의 하나님이라는 속성에 맞지 않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습니다. 그 과정이 참으로 졸렬하고 악합니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 그의 간음과 간접살인에 대한 죄상을 드러냅니다. 다윗이 찔림을 받고 회개를 합니다. 침상이 적셔질 정도로 진정한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그 용서는 다윗을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 전 왕인 사울은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전쟁터에서 전사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죄를 묵인하시지는 않습니다. 다윗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통해 난 아들이 죽습니다. 저는 노년에 그의 아들 압살롬으로 인해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솔로몬을 제외한 자신의 아들들이 압살롬에 의해서 죽습니다. 첩들은 대 낮에 욕보임을 당합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용서하시지만 죄를 묵인하시지는 않습니다.

 

이 모습은 아담과 하와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모습에서 나타나며 가장 가깝게는 우리의 죄악의 용서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정의의 하나님은 누군가의 피 제사를 필요로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저가 죽으심으로 온 인류가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성경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모세는 최대한도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진멸을 용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3천명의 사람이 죄에 대한 증거로 죽습니다. 기도와 연관하여 무엇을 보여줍니까? 모세는 기도하고 하나님의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데 그 응답 속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이 있습니다. 공의롭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주권대로 응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기도하므로 하나님은 응답하시나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신다는 교훈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이 살아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의 긍휼을 간구하십시오. 정성으로 지성으로 작정으로 서원으로 눈물로 새벽제단을 쌓으며 때로는 무시로 간구하십시오. 그러나 내 맘대로 기도의 응답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신 뜻대로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은 결국 나를 살리고 나와 연관된 이웃을 살리는 기도의 응답이 될 것입니다. 이 기도에 승리자가 되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기도는 끊임없이 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합니까?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실 때까지 다른 말로 응답받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도록 하실까요? 그 기도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쉬운 말로 우리의 기도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주십니다. 결국 기도의 응답은 내 맘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게 하십니다. 기도해가는 과정 속에 말입니다.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모세는 첫 번째 기도를 시내산에서 드렸습니다. 거기에서 응답을 받았으나 또 다시 기도합니다. 산에서 내려오니 정말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그 모습이 너무 악하고 끔찍했던 것입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모세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집어 던질 정도였습니다.

 

모세는 다시금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또 다시 강청의 기도를 드립니다. 32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절을 또 읽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래, 이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사자를 통하여 적군을 물리치게 할 것이다

 

그런데 모세의 기도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다시금 기도하러 홀로 회막에 들어갑니다. 끈질긴 강청이 계속됩니다. 그 모습이 3312절과 13절에 나타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저를 주의 은총 받은자로 여기셨다면 이 족속도 주의 백성으로 여겨주옵소서!” 지도자다운 모세의 기도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십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 이 정도 응답받으면 기도를 쉬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또 다시 강청합니다. 그 내용이 다음절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는 매일 같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에 기도제단을 쌓으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그 기도는 참으로 귀합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까? 가족과 동기들과 생업과 건강을 위해서는 물론이거니와 구역원들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과 세계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시겠지요.

 

어느날 갑자기 출현하시는 성도님들고 계세요. 급한 기도제목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몇주가 지나고 나면 또 몇 달이 지나고 나면 안보이세요. 궁금해서 나중에 알고 보면, 기도 응답을 받으신 거에요. 참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기도는 쉬임 없이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거리도 너무 많지만 그렇게 기도해가는 중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성품이 변해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자라갑니다. 그리고 나 뿐만이 아닌 나의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는 중에 수 많은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세상말로 기도꾼이 되어갑니다. 중보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길은 탄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기도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기도를 왜 계속해야 하는가? 그 기도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바가 무엇인가를 알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방향이 바르게 잡힙니다. 보십시오. 모세의 처음의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주여, 이 백성이 악을 행했을지라도 용서하여주시고 진멸을 면하게 하소서~!” 생존에 관한 기도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소서~!” 무슨 기도입니까? 생활에 관한 기도입니다.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죽지 않게 되었으니, 목구멍이 포도청입니다. 취업과 생업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어요. 드려야 하지요. 살아야 하지요.

 

그런데 세 번째 기도는 어떠합니까? 자꾸 변해갑니다. 정말 필요한 기도로 변해갑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이 백성과 함께 동행하옵소서~!” “내가 최고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나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삶의 조건을 간구하는 기도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 영적인 동행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을 구합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기도하시는 여러분은 축복자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생존과 생계를 넘어서서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이 함께 동행하심이 만족이 되시며, 여러분의 삶 자체에 하나님의 큰 영광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무엇을 하든지 심령과 가정과 직장과 일터에서 그리고 발걸음 닿는 곳마다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아름답게 쓰임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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