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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39] 주의 종의 리더쉽과 중보기도
운영자 2018-05-10 추천 0 댓글 0 조회 853
[성경본문] 출애굽기32:11-14 개역개정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의 종의 리더쉽과 중보기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인 것처럼 그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므로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멸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당연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으로 금한 두 번째 계명이 있어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그때에 모세가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그러지 마옵소서!” 12절 후반부에 말씀합니다.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이 장면을 대하면서 어디에서 본 듯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불로 멸망키시겠다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간구했던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18:23,24)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하는 아브라함의 모습,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곁의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중보자로 선 중보기도자의 모습입니다.

 

또한 사도바울이 그런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저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헬라파 유대인들과 헬라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로 평생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러면서도 한편 자신의 동족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도를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유대인들 자신의 동족, 유대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9:1~3)

 

이게 보통 생각이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나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으면 나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지옥에 가도 좋다 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대단한 동족애입니다. 저는 결국 환란과 핍박이 자신을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생명을 각오하고 들어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결국 그 결과로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저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밤 중에 주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격려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311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동족애로 가득한 바울의 생명을 건지시고 감옥에서 죽게 하지 아니하시고 로마에 후송하게 하십니다. 그의 간절한 염원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서야 저 하늘나라 주의 품에 안으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또 바로 그러한 모습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5:13) 그러셨기에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죄가 없으신 데도 죄인이 되셔서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이 달리는 십자가의 형을 받았습니다. 그를 따르던 군중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배반을 당하시고 그 십자가에서 양손과 발에 대못으로 박히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그 처절한 순간에 하나님께 드렸던 중보 기도의 내용이 오늘 본문 모세의 간청과 또 흡사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23:34)

 

이 사랑 많으신 예수님께서 사랑 없는 각박한 세상을 보셨습니다.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 사단의 풍조는 사람들을 자기밖에 모르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습을 무지로 보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지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44:18)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 왜 그렇게 죽으셔야 했습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한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러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0: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참으로 목자다운 목자가 그리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다운 리더가 그리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삯군이 판을 치고 있는 겁나는 시대입니다.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슬픕니다. 우리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교회의 중직자들은 그래야 합니다. 특별히 목사가 그러해야 합니다. 장로가 그러해야 하고 선교사가 그러해야 합니다. 이 새벽에도 그것이 기도제목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앞에 선 자들이, 리더들이 아브라함과 모세와 바울과 예수님의 이 살신성인의 이 이타주의의 영성을 닮을 수 있다면,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쉽을 가질 수 있다면, 교회도 세상도 많이 변할 것입니다.

 

과거에 학창시절에 역사서적을 읽다보면 그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다 들어보셨나요? 초개(草芥)풀 초()’티끌 개()’자로 이루어진 말로 흔히 지푸라기를 이르는 말입니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하여, 대의를 위하여, 독립을 위하여, 개인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여전히 이 땅에 존재하며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열사나 또는 임진왜란 때에 나라를 위해 적의 장수를 끌어안고 진주 촉석루에서 몸을 던진 논개나 이순신 장군 같은 모습들이 그 모습일 것입니다.

저는 지난 3일간 두만강변에 있었습니다. 도문, 연변, 연길, 훈춘, 용정과 같은 곳이 그곳입니다. 우리에게는 만주벌판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용정은 민족시인이었던 윤동주 시인이 성장하고 살았던 곳이지요. 그가 공부한 대성중학교에도 가 볼 수 있었습니다. 200만명의 동포들, 소위 조선족들이 살고 있는 그곳입니다. 북한에서 진출한 식당들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두 번이나 밥을 먹었습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북한편도 남한편도 없습니다. 그곳에 안내를 해주신 북한을 200번이나 출입하며 북한 동포를 위해 수고하는 목사님과 또 함께 하는 분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저들이 바라보는 남한과 북한의 평을 듣고 저는 놀랬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북한은 불쌍한데 불행하지는 않고, 남한은 불쌍하지는 않은데 불행한 모습이다.” 북한은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서 불쌍한데 여전히 순수함이 있고, 서로를 불쌍히 여겨 서로 돕는 모습이 있어, 사람다운 그 모습에 그곳에 가면 행복감이 느껴지는데 반하여, 남한 너무 잘 사는데, 모든 것이 편리한데 평안이 없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아도 삶에 지친 모습과 서로를 위하지 못하는 이기주의 모습들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불만지수가 높아만 가는 한국, 그래서 우울증과 자살율이 높아가고 있는 나라, 얼마나 경쟁이 심하면 무한경쟁이란 말과 이 땅에도 지옥이 있으니 입시지옥이 여전히 그치지 않는 어두운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 동포들을 돕자, 도문에 돈 벌러 나오는 가난한 동포들, 또 기회가 닿는 대로 북으로 돌아가는 저들을 통해 물품을 보내어 자신들의 가족과 친척들 이웃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선물을 주어 보내자.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다 맞습니다. 우리교회가 돕는 물질은 한달에 50만원인데 이 돈으로 집을 얻어서 그렇게 돈벌이 하러 온 북한동포들의 거처를 마련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대화 내내 답답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를 저들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도자들입니다. 북한 정부 고위관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민정책을 통해 인권을 유린하고, 백성들의 배고픔에 민감하지 않고, 자신들은 호례호식하는 고위관리들,

 

우리는 이 새벽에도 기도합니다. 이 시대에 모세와 같은 일꾼, 긍휼함이 있어 나보다는 백성을,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 정치인, 기업인, 선생님, 성도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기도할 수 있는 주의 종과 또한 그러한 주의 종들을 위해 사랑과 존경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는 나라 되게 하소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스포츠, 예술, 나라와 가정과 일터와 모든 생업의 현장에서 모세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우리를 생각하게 하소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쓰임받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그 순수하고 사랑 많은 간청 앞에 마음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또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 모두 13절 말씀과 14절 말씀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사랑이 많으셔서 긍휼하심이 많으셔서 우리의 눈물의 중보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이 새벽에 여러분 주위에 가정과 자녀와 친척과 교우와 동료와 직원과 그리고 나아가 이 나라 민족과 북한 땅의 동포를 위한 중보기도가 있기를....그래서 응답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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