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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14] 마지막 재앙
운영자 2018-02-22 추천 1 댓글 0 조회 1069
[성경본문] 출애굽기12:29-36 개역개정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마지막 재앙 

 

아홉 가지 재앙을 당하고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은 바로왕은 결국 열 번째 재앙을 맞이하고서야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열 번째 재앙은 모든 생명 있는 것의 처음 난 것이 다 죽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미 이 일은 모세를 통해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 죽음 가운데 자신의 장자가 속해 있음을 생각지도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29절은 그 죽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서웠습니다. 바로왕의 장자로 옥에 갇힌 자의 장자도 가축의 처음 난 것 까지도 다 죽었습니다. 장자가 죽는 다고 하는 것은 곧 애굽의 모든 영화와 권세를 철저하게 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놀람과 슬픔으로 인한 애곡이 바로왕궁으로부터 일반가정과 옥에 이르기까지 가득했습니다. 30절이 이를 보여줍니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앞서 아홉가지 재앙으로 말미암아 애굽왕이 가졌던 모든 자신의 권세와 힘과 능력이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을 처절이 느껴야했습니다. 그와 애굽 백성들이 믿고 경배하던 그 어떤 신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처럼 막심한 손해를 보면서도 끝까지 항복하지 아니했던 그의 뒷 배경에는 그의 마음을 잡고 있는 보이지 아니한 영적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악한 사단의 힘이요, 마귀의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재앙이 진행되는 가운데 바로는 힘들고 버티기 어려우니까 모세의 요청에 허락을 하긴 하는데 다 안들어 주려고 버팁니다. 다는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이는 꼭 주께서 택한 자를 부르실 때에 버티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 영혼을 붙잡고 주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마귀의 역사와 흡사합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8장 25절에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는 하되 이 땅에서 하라” 고 허락합니다. “멀리 가지 말고 여기에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허락합니다. 그러나 다 넘기지는 않습니다.

 

사단의 전략이 그러합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신앙생활을 위하여 교회를 다니고자 할 때에 하는 조건제시가 있습니다. “믿기는 믿어라 그러나 세상과 완전히 결별하려 하지 말고 그냥 이 안에서 믿어라.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라.”

 

재앙이 올 때마다 견디기 어려운 바로가 조금씩 허용의 범위가 넓혀집니다. 8장 28절에 보면 바로가 말합니다.내가 너희를 보내겠다 광야에서 드려라 그러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마라” 처음의 허락의 범위인 “이 땅”에서 이제는 모세가 요청한 고센땅과 분리된 장소인 “광야”로 넓혀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에 깊이 들어가는 것을 사단은 원치 않습니다. 절대로 원치 않지요. 때로 이 사단은 환경과 여건과 그리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역사합니다. 신앙이 없는 남편일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나쁜 게 아니라 사단이 그 뒤에서 역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아내에게 말합니다. “그래 신앙은 필요하지, 믿음은 유익해, 그런데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말어.” 그 범위를 한정 짓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대결이 팽팽한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0장 9절과 10절에 재앙이 점 점 더 심해지자 바로왕이 말합니다. 함께 찾아가 읽겠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너희의 어린 아이들은 데리고 가지 마라” “당신만 교회 다녀. 아이들까지 데려가지 말고...왜 걔들까지 간섭하고 그래” 그런말 아니겠습니까?

 

이 모습이 오늘날 사단의 역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 청년들, 갈수록 신앙의 강도가 나약해져 갑니다. 교회를 떠납니다. 신앙생활에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오는 세대를 위한 강한 기도와 투자와 노력과 애씀이 없으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영적인 고센땅으로 돌아가 그곳에 머물고 마는 것이에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세상에 머물고 마는 것이에요. 고센땅, 좋아 보이지요. 풍요롭지요. 재미있지요. 그러나 그 결말은 멸망입니다. 바로왕의 원대로 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래가 없고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가 주일학교와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신앙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부단히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심고 물질로 투자하고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영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정말 수고해야 합니다.

 

금년부터 중고등부 싱가폴 비젼트립을 실시하고 청년들은 필리핀 단기선교를 갑니다. 벌써부터 준비가 시작되었어요. 싱가폴과 연락하고 필리핀 선교사님과 연락하고 현지 사역하셨던 선교사님 오셔서 청년 헌신 예배시에 말씀 전하시고 끝나면 오리엔테이션을 시간을 갖습니다.

 

물질이 없어 우리 자녀들이 단기선교에 참여 못하면 교회가 지원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들의 마음이 뜨거워져야만 해요. 세상풍조에만 눈이 어두워져 버린 그 눈을, 선교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보고, 그 영적인 눈이 뜰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주일학교가 살고 청년들이 살면 교회는 반드시 살아난다.

사단은 놓아 주지 않습니다. 끝까지 놓아주려고 하지 않아요. 바로왕의 모습에서 또 그 모습을 봅니다. 출애굽기 10장 24절입니다.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집요합니다. 어린것들은 허락했어요. 아이들도 데리고 가라. 그런데 이제 “양과 소는 가지고 가지 마라” 무슨 말입니까?

 

이 시대의 언어로 표현하면 “그래 좋다. 너도 교회에 가고 아이들도 가고 다 좋은데 헌금은 너무 많이 하지 마라. 시간도 바치고 마음도 바치고 다 좋은데 물질은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노후 준비해야 할 것 아니냐?”

 

여러분, 믿음이 없으면 물질 못 드립니다. 드려도 겨우 드립니다. 형식으로 드립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리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물질에서 완전히 자유함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분명한 것은 물질에 얼마만큼 자유 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의 깊이도 크기도 달라집니다.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그러했습니다. 죤 웨슬레도 조지 뮬러도 그랬습니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실 때에 맡길만한 사람에게 부어주신다.” 청지기로써 제대로 물질을 관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아낌없이 맡기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실 때에 나는 청지기로써 기꺼이 광문을 열고 “예, 주인님, 어떤 것을 얼마나 내 드릴까요. 주인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지요.”

 

그런데 바로왕이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모세는 양보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10장 25절, 26절,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그러니 결국 호되게 얻어맞습니다. 후회해도 늦었습니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티고 그렇게 두드려 맞으면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무시하던 그는 마침내 열 번째 재앙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 드렸습니다. 그 뒷 배경에는 악한 마귀의 역사와 조종이 있었던 것이에요. 마귀의 영역, 우상신들로 들끓고 있는 땅, 인간이 신적 위치에 올라가서 약한 자들에게 고역으로 노역으로 압제를 일삼는 군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시니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바로왕을 철저히 꺽으시는데 저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것, 자신의 자식이요, 곧 애굽의 신의 현현이요, 장차 그 왕국을 이끌어갈 장손의 생명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렇게 호되게 얻어맞고서야 마침내 출애굽을 허락하게 됩니다.

 

12장 31절과 32절을 읽겠습니다.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출애굽의 역사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이 구원이 우리에게 왔습니까?

 

이 땅에 복음이 들어 올 때에 쉬었습니까? 한강물이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었다고 했습니다. 목이 얼마나 많이 잘려 나갔는지 절두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순교자의 피의 터전위에 주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고 그 피 묻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한말의 역사를 다시금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빛나는 대한민국이 서 있습니다. 동계올림픽을 치루고 150년전만 해도 정말 가난과 무지와 질병이 가득했던 이 나라가, 내일이 없었던 이 작은 나라가....., 6.25전쟁의 폐허위에서 다시금 일어서고 세계에 그 이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이 온 것이 누군가의 희생속에 온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정말 고센땅을 벗어 났는가? 약속의 땅에 들어와 있는가?

 

이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과 저와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 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위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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