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열왕기하3: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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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3.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6.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7.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저주의 운명을 끊고 일어서려면
어떤 집안의 자녀들은 만사형통의 모습으로 잘 되어 가는데, 어떤 가정은 자녀들은 반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모습이 있습니다. “우찌, 우리 집안에는 되는 일이 없노~?” 왜 그럴까 의아해 합니다.
한 집안의 가정에 나타나는 복과 화에 관한 문제는 복잡하지만 먼저 그 이유를 고린도후서 9장 6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9:6)하는, 즉 “심는대로 거둔다”고 하는 우주적인 법칙에 근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경우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시편37편 25절에 보면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가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그렇습니다. 의인은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버림을 당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또는 잠시 환난과 시험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버림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반면에 악인의 자녀에게는 그 마찬가지로 죄과가 자손의 대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를 성경이 말씀합니다.
시편 37편 28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시37:28)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잘한 것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선한자의 자손에게까지 복을 주시고, 마찬가지로 악한 것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악한자의 자손에게까지 화를 주십니다.
요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1703-1758)는 미국 초창기의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요 신학자이며 목회자요, 미국의 대각성운동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신앙이 독실한 처녀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으며, 세월이 지나서 그의 후손 729명을 조사하였습니다. 300명의 목사, 65명의 대학 교수, 13명의 대학교 총장, 60명의 저술가, 3명의 국회의원, 1명의 부통령이 배출되었습니다.
요나단 에드워즈의 집에서 멀지 않는 곳에 막스 죽스(Max Jukes)라는 불신자인 부도덕한 사람이 살았습니다. 자기와 비슷한 처녀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는데 그의 후손은 1026명이었습니다. 그의 후손을 조사해 보았더니, 300명은 일찍이 죽고, 100명이 평균 13년의 감옥 생활을 하였고, 200명이 공창(창녀)이며, 100명은 알콜 중독자로, 이 불신앙적이며 부도덕한 가정은 100만 달러의 국고를 소비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는 자녀를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삶은 고스란히 자녀 때에 거두는 열매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것, 선한 것으로 심어 믿음의 가문을 이루어 가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의 이야기는 이 집안에 흐르는 저주와 반대로 축복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주의 견본은 아합왕의 자손의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들은 여호람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왕위에 오른 아들이 있으니 여호람왕의 형이었던 아햐시야였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에 다락의 난간에서 떨어져 병을 얻었는데 그때에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고, 바알세붑을 의지하므로 죽게 됩니다.
이 불행한 일은 일찍이 예견되었습니다. 바로 그의 아버지 왕인 아합왕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왕이 왕궁 가까이 있는 포도원이 탐이나 주인이었던 선량한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이 사실을 안 엘리야가 그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니 아합이 크게 뉘우칩니다. 그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시지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왕상 21:29)
비슷한 모습이 다윗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을 때에 회개하는 다윗을 보시고 용서하시지만 그와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죽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는 솔로몬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이방민족으로부터 우상신을 섬기는 여러 후궁들을 들이게 되니 성전 안에 우상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그 때에 심판하시지는 아니하셨으나 그의 아들 때에 심판하시므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비참한 결과를 보게 됩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자녀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친다는 진리입니다. 그러니 참 잘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특히나 믿지 않는 집안에 홀로 믿는 자의 모습으로 서 있다면 집안을 의인의 가정으로 만드는 일이 가장 큰 사명이 될 것입니다.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셔서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서 18장 21절로 23절에 약속하십니다.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 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아멘~!
성경본문에 등장하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 왕이 바로 그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합왕의 죄악으로 인해 그의 아들의 때에 저주가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심는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의 심판이었어요. 형, 아하시야왕이 그렇게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서 질병에 걸렸을 때에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바알세붑을 섬기며, 이 모습을 보고 직언을 하는 엘리야 선지자를 잡아드리려 하고, 그러다가 죽었으면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돌아와 자복하고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자리에 앉고 보니 그러한 겸손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연약합니다. 권세의 자리에 앉으면 세상이 쉬워 보이는 모양입니다. 어제 심리학자가 쓴 한 책의 서평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부자와 높은 자리에 있는 자는 거짓말을 잘하고, 가난한 자는 너무 쉽게 믿어 어려움을 당한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자와 권세있는 자는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가? 그게 통하니까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약한 자들이 저들의 거짓에 쉽게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평하신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십년세도”라는 말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악인에게 반드시 심판이 임합니다.
자~! 여호람이 자신의 운명을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돌아가야 했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했습니다. 그것이 2절과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3.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바알의 주상을 없앤 일은 아주 잘 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한 그 죄를 따라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여로보암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시조입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이 있어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변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왕이 된 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어요. 그가 왕이 되고 나니, 하나님이고 뭐고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2장 31~33절에 여로보암의 이 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31.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여로보암은 자기 맘대로 바꿔서 이상한 사이비종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금송아지에게 예배드리게 했습니다. 자기 말을 듣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임명했어요. 맨 처음의 마음이 변해버린 것입니다. 왕이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왕이 되고 나니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여호람 왕이 또한 그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의미로 바알의 주상은 없앴으나 정치적 야심을 버리지 못하고, 순진한 백성들로 하여금, 금송아지 앞에 예배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 때에 예언된 저주받는 아들의 운명을 자초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겸손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고 악인이 그 길을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기회를 주시는 거에요.
이웃족속인 모압족속이 이스라엘을 배반 합니다. 바치던 조공을 멈춥니다. 두려웠던 왕 아합이 죽었으니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모압족속은 다윗 왕때부터 이스라엘에 조공을 드리며 화친정책을 펼쳐왔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이 죽고 나서 아하시야도 병들어 죽고 나니, 여호람왕 때에 와서는 아예 멈춘 것입니다. 4절과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5.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매년 새끼양 십만마리와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조공으로 바쳤었는데 그만두어버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경제정책에 큰 타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호람 왕이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대와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필요한데 야망에 취해 이를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전쟁을 생각합니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선지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전쟁을 해도 자신의 힘으로 안된다 생각하니 남왕국 유다왕인 여호사밧에게 연합동맹군 결성을 요청합니다. 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내일 이어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일이 잘 안될 때에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부모가 심어놓은 것이, 선한 것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남들은 잘 되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이지, 왜 내 가정은, 내 자녀들은, 되는게 없지?”
이럴 때에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절대로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무리 높아지라고 추켜세워도 그런 말을 듣지 말고,
늘 하나님 앞에서 “저는 예수의 피로 용서함 받은 죄인입니다. 주의 은혜 아니면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라는 겸손한 심정으로 살 때에 하나님께서는 계속 사용하시고 높여주십니다.
일이 생각보다, 내 노력보다 훨씬 잘 될 때에는,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누군가가, “나의 부모님이, 선한 일을 많이 하셨나보구나~!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이 많아서 그래~! 내 아내가 내 남편이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그래. 아~! 그러니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시구나~!” 생각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런 모습으로 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자자대대손손 믿음의 가문을 이루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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