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28:16-2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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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야곱에게 주신 복: 하나님께 서원함
찬송: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x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시작하면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올 한해가 주 안에서 복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복된 삶이란 우리가 함께 부른 찬송가 가사처럼 먼저는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복된 자의 모습이 되고나면, 이어 따라서 오는 복이 있으니, 그것은 범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하는 일마다 형통함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육신도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충분히 건강하여, 주께서 허락하신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건강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가장으로써, 어머니로써, 자녀로써, 일터에서는, 직장인으로써, 사업주로써, 학교에서는 학생으로써, 그리고 교회에서는 직분자로써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건강의 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될 때에 이처럼 복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옵기는, 2019년도 한해를 시작하면서 이처럼 정성으로 드리는 이 신년축복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여러분 모두가, 떨어져 있는 자녀들과 가족 모두에게 까지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성경에는 ‘인생역전’을 이룬 복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러 명 등장합니다. 오늘 새벽부터 토요일까지 4일인데, 네 명의 ‘인생역전’을 이룬 인물을 통해, 그 모습을 살펴보고, 영적인 교훈을 얻어, 우리 모두가 복 있는 자의 반열에 서기를 원합니다.
간절히 기도하옵는 것은, 단에 세우신 이 부족한 종의 입술을 통해, 크고도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 중에 역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 번째 인물은 야곱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사람의 자화상이라 일컫는 야곱, 그는 꾀쟁이였고, 욕심쟁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장자권을 형으로부터 빼앗고자 아버지까지 속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도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 자격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고쳐서라도 복을 받게 하십니다. 때리시고 어루만져서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셔서 복 있는 사람들의 반열에 세우십니다.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인 것입니다. 부족합니다. 누구 앞에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입니다.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하시고, 오늘 이 새벽에도, 새해를 시작하면서, 주님 전에 부르시고, 심령을 변화시키시고, 성숙하게 만드시고, 마침내 복 있는 자의 반열에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이 사랑에 우리가 감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본문으로 들어갑니다. 형 에서의 진노를 피해서 한 달 길이 넘는 길을 걸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야곱은 어느 날 밤 평생에 있을 수 없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땅과 하늘로 연결된 사닥다리를 보게 되었어요. 천사가 그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는데, 그 꼭대기에 보니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그리고 아비 이삭에게 주셨던 복을, 야곱에게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복의 조상으로 야곱을 그 반열에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약속은 ‘임마누엘’의 약속이었습니다. 형의 진노를 피해 집을 떠나 홀로 도망자가 되어, 나그네의 모습으로 먼 길을 거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 얼마나 감사한 약속입니까? 언제 어디에서든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되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에요.
야곱이 고향을 떠난 후 약 20년 동안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그 날들이 곤고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 보호하셨습니다. 결혼도 하게 되었고 자녀도 갖게 하셨고 또한 부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임마누엘의 축복이, 오늘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자에게도 주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두려울 것이 없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자체가 이미 큰 힘이요, 능력인 것입니다.
꿈에서 깨어난 야곱의 마음에 감동이 일었습니다. 비록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나 그의 마음에는 직접 대면한 것처럼 생생했어요. 그러니 그의 첫 번째 고백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는구나! 두렵도다! 이곳이 하나님이 전이구나!”
성도 여러분! 왜 야곱이 두려움을 느낍니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자는, 그 위대하시고, 광대하시고, 존귀하시고, 거룩하심 앞에서, 초라하고 연약한 인간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그 위엄 앞에서, 경외하는 마음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경외함이, 두려움이, 인간의 생명을 살리고, 양심을 살리기 때문에, 이러한 자는 이 땅에서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잠언 9:10 말씀이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두려워하는 자, 지혜를 얻는 첩경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야곱은 심령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누구든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그 심령이 변화됩니다. 새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복된 인생이 됩니다. 이 변화된 심령이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심령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야곱의 약속이 있습니다. 이를 보통 우리는 서원이라고 합니다. 서원기도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합니다.
서원기도는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꼭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에 큰 복이 임합니다.
제가 필리핀에 선교사로 나가면서 주님 앞에 약속했습니다. “저에게 사역의 열매를 주시기 전까지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마치 하란으로 떠나는 야곱의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욕심도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필리핀하고도 산속에 무지한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2년 지나면 사역의 열매들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화산 폭발 이후에 그곳에 들어간 저와 아내 이제 갓 돌이 지난 딸, 이어 출산한 아들 왕규, 사역의 열매는커녕 현지의 홍수와 독충과 풍토병, 사역은 둘째치고, 나 한 사람, 내 가족, 추스르는 일과 적응하는 일만으로도 힘겨웠습니다.
그런데 필리핀을 다녀가시는 담임목사님께서 그 상황을 보시면서 2년차가 되니 들어와서 쉬었다가라고,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말씀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하지요.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었어요. “저에게 사역의 열매를 주시기 전까지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고국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사역에 매친했습니다. 3년이 지났어요. 또 연락이 왔습니다. “들어와서 쉬었다 가라” 하셨어요.
몸은 말라 갔습니다. 얼굴에는 그 뜨거운 햇볕에 그을러서 기미가 잔뜩 내려 앉았습니다. 왜 고국에 들어가 쉬고 싶지 않겠어요. 그래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제 아내가 만삭이 되어 출산을 한 달 앞두게 되었습니다. 공항에서 아내를 혼자 들여보내면서 “미안해, 함께 가지 못해서~!” 동료 선교사들이 지독하다 했어요. 담임목사님도 손 들었어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이 있으니까요. “하나님 저에게 사역의 열매를 갖는 복을 주세요”
그리고 고국을 떠난 지 4년 반이 지나면서, 저는 하나님의 크신 복을 체험했습니다. 그동안 제자훈련을 통해 성장한 형제들과 함께 16지역에 새로이 교회개척을 하게 되었고, 아내는 까왁교회에 성공적으로 유치원을 설립하고, 그 지역에 소문난 유치원이 되었어요.
그러므로 그 결과에 감사하며 그 일로 수고가 많았던 18명의 현지인 교회 개척자들, 그리고 두 명의 자매와 함께, 스무명이 고국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마닐라에서 형제들과 비행기를 타고, 또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우리 산돌중앙교회 교우들의 환영을 받을 때에 그 감동과 감격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약속하는 것 없이 그냥 신앙생활하면...., 물론 신앙생활은 하시겠지만 때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사람 앞에 약속도 중요한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겠지요.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야곱이 왜 복 있는 자의 반열에 설 수 있었는가? 그렇게 복을 받고 싶어서 형을 속이고 아비를 속이고 때를 노리고....., 그런데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영적인 강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정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서원을 하면서 까지 그 복을 얻고자 하는 결단력입니다. 그리고 그 서원을 이루는 대단한 열심과 투지와 노력입니다. 그 내용을 보겠습니다.
그 첫째는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21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니 서원이에요.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20절과 21절이 보여줍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말씀은 “나는 종이 되겠습니다.” 그 말입니다. “나의 삶의 주인으로 섬기겠습니다.” 평생토록 힘을 다하여 주인님으로 모시고, 섬기고, 또 순종하겠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우선적으로 드리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체험하고 만날 때에 이런 약속이 나옵니다.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앞에 야곱은 이렇게 서원을 하므로, “그래? 그러냐? 그래 알았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로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 야곱의 서원은 이러합니다. “나는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라고 말씀했습니다.
‘돌을 세운다’ 함은 제단을 쌓는 것이요. ‘돌을 세운다’ 함은 그곳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념하고 찬양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이 시대의 언어로 해석을 하면 이는 “나는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자로 서겠습니다” 그런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곳 바로 ‘벧엘’입니다. 그 땅의 원래 이름이 루스 였어요. 그런데 야곱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곳의 이름을 벧엘 이라고 불렀습니다. ‘벧’ ‘엘’ 이란 뜻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 즉 ‘하나님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날 이 시대에 이 벧엘은 바로 교회입니다. 간절히 바라옵기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이러한 예배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체험하며, 그럴 적마다 그 감동에 젖어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배, 예배자, 이처럼 진정한 예배자가 될 때에 복 있는 사람의 반열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야곱은 서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22절 말씀이지요. 왜 이 약속이 귀한 것일까요?
하나님이 물질이 없어서 물질을 원하시는 분이신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유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없으세요. 그런데 왜 야곱은 십일조를 드릴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기왕 드릴 것이면 십의 일조가 아니라 십의 이조, 또는 십의 삼조도 드릴 수 있을 텐데, 왜 십의 일조 입니까? 이 십일조에 관해서는 많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새벽에 다 말씀드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아주 간략히 말씀 드립니다.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물질의 공급자가 되심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여호와께 십일조를 드립니다.” 라는 본래의 의미는 “하나님은 물질의 축복자가 되십니다” 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이 십의 일을 드리는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했던 것이 아니었어요. 이방인들도 전쟁을 해서 이기거나 사냥을 통해 전리품 또는 수입이 있으면 십분의 일을 자신들의 신에게 바쳤습니다. 이 모습은 축복자로 신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렇게 바치는 행위를 통해, 신은 또 다시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만일에 이 십일조를 다른 신에게 드리면, 그 물질을 받는 신이 이 물질을 드린자의 영적인 축복자가 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드리는 자와 받는 자 또 다시 복을 주시는 자와 받는 인간 사이에 깊은 영적 교감, 깊은 영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물질, 생계에 필요한 물질과 그 모든 필요의 주인이 누구신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믿으면, 자신이 취하고 얻고 받는 바의 한 부분을 다시금 하나님께 돌려 드림으로 “하나님 주께서 이렇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 표현인 것이에요. 그리고 또 믿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라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의 복의 주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그것이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더 크신 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야곱, 그는 인생의 가장 어려운 때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에 젖어 서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서원을 지켰습니다. 그에게 복이 임했습니다. 큰 복이 임했습니다.
우리도 서원을 해야 합니다. 서원은 결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단을 보이는 것입니다.
“주여! 이제는 내가 새로운 삶을 살겠습니다. 다시는 죄악의 길로 가지 않겠습니다.
주님 앞에 예배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주여! 내가 이렇게 주를 위하여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이 일을 하겠습니다. 저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면 나에 복을 주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내가 믿기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결단이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더 복된 인생,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인생,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 속에 축복자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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