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강해 79] 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
- 운영자 2025.12.23 조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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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75 : 1 - 10 | 개역개정
- 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 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 3.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 4.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 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 6.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 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 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 9.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 10.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
오늘 전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입니다. 시편 75편에 담겨져 있는 주제가 그것이에요. 그 중심 구절을 6절과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75:6~7)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낮추시고 어떤 사람은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그 권세가 동서남북 즉, 세상에 있는 것 같으나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라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세상의 권력, 질서와 윤리 질서를 관장하시고, 또한 심판의 권세를 행사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높임을 받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 모습 보시고 높이실 때 가능하며, 어떤 자를 낮추시는 것! 또한 그렇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불꽃 같은 눈으로 바라보시니,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에 그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1절).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섭리와 배려가 멀리 있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이제 곧 시작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안이 어두워 보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주의 자녀 곁에 계셔서 일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것이에요. 이처럼 악인을 낮추시고 의인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삶 가운데서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우리가 그 모습을 성경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출애굽 할 때, 이를 저항하는 애굽왕 바로를 낮추시고, 광야의 목자인 모세의 손을 높이 드신 하나님이세요. 사울왕을 낮추시고 도망자 다윗을 높이 세우신 하나님! 450명의 바알의 선지자들을 낮추시고, 그들과 홀로 대적한 엘리야를 높이신 하나님! 교만하고 교활하고 악한 하만을 낮추시고, 모르드개를 높이 세우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행하셨습니다.
악한 자를 낮추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높이시는 그 손길을 볼 때 우리는 박수를 치며 위로를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악한 자가 득세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이요, 슬픔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감사할 수 밖에 없어요.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해요.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내 손을 들어주실 만한 존재인가?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의 목전에서 내가 주께서 베푸시는 상을 받을 만한 존재인가? 이 새벽에도 기도합니다. 내가, 내 가족이, 내 구역이, 내 교회가, 내 생업이, 내 사업이, 내 나라가 하나님 보실 때 어떠한가? 아니라면 회개하시므로, 다시금 결단하고, 돌이키시므로, 하나님께서 그 모습 보시고, 여러분의 손을 높이 들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정한 기한에 하겠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시75:2) 하나님의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그때와 다를 수가 있어요. “빨리 손 좀 봐주세요” 바라며 견디지 못해 할 때도 있어요.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렇지요. 사람의 생명이 죽어가는 긴급한 상황이 되면 더욱 그렇지요.
가난한 자에게 겨울은 힘든 계절입니다. 추위를 따뜻하게 데울 난방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속이 비면 더 춥기 때문이에요.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겨울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계절이에요. 겨울도 필요해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노아 때, 대 홍수로 큰 심판이 그친 후에,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세요.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
하나님의 시간으로 볼 때 누군가에게는 겨울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자연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속에 모든 자연의 변화와 움직임은 그 의미가 있습니다. 하물며 인간 세상이겠습니까? 그러므로 견뎌야 할 때가 있는 거에요. 하나님의 시간인 것을 인정하고 인내하며, 주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리며, 바라며, 기도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제가 어느 한 추운 겨울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제목이 ‘겨울에게 묻고 싶습니다’입니다.
날씨가 이토록 추운 것은
따스함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온 세상을 하얗게 흰 눈으로 덮는 것은,
가진 자, 덜 가진 자, 잘난 자, 덜 잘난 자,
별 차이가 없음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겠지요?
얼어붙어 미끄러운 길, 조심, 조심 걷게 하는 것은,
내 몸 내 것이라고 막 쓰지 말고,
귀히 여겨 잘 사용하라는 것이겠지요?
늦은 밤은 더 추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종종 걸음으로 재촉케 하는 것은
가정이 따스한 천국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창문에 김이 서리고 밖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위에 하트를 그리고, 별을 그리고....,
따뜻한 내일을 꿈꾸게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회색의 빌딩 사이로 부는 바람이 이리도 차가운 것은
사랑하는 연인, 서로를 부둥켜안고 사랑의 체온으로
찬바람도 넉넉히 뚫고 걸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겨울밤의 하늘이 더 차가운 것은
밤하늘 별들 더 영롱히 빛나게 하여
바라보는 눈망울 소망으로 젖게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겨울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는 어제 중보기도단 방에 올라온 기도응답에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금년 늦은 봄, 어느날 제 방에 찾아온 박은총 청년은 병원에서 받은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혈액암으로 판정된 결과를 가지고 와서 곧 항암치료가 시작될 것을 담담히 말했습니다. 그 청년이 제게 말한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자신이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된 것이, 이 어려운 때를 이겨내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다시금 서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오랫동안 신앙의 방학을 하다가 우리 교회 춘계 전도부흥회 이후, 전도하는 조덕현 선교사님의 권유로 다시금 신앙생활 시작하게 되었거든요. 과거에 조선교사님의 고등학교 제자였는데 믿음에서 멀어지 모습에 안타까워 전도했던 거에요. 제가 형제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찾아와서 기도의 시간을 가졌지요.
항암치료가 시작되었고, 기도하면서 이겨냈습니다. 모든 청년들이 그리고 중보기도단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 밝은 모습으로 청년 예배에 참석한 그 형제가 전해 준 소식을 중보기도단 단장이신 김문숙 권사님이 중보기도단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내용이 이러해요. “모든 분들의 걱정과 기도, 하나님의 축복아래 암세포가 사라진게 확인되었습니다. 두달 뒤 추가검사를 진행할 예정이고, 이때도 암 세포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6개월 뒤 검사라고 합니다. ㅎㅎㅎ^^!” 제가 감사해서 답글로 올렸습니다. “체력과 지성을 최고라 여기는 청년의 때 그 보다 더 크신 주님을 만나고 체험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운 겨울이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견디고 나면 봄이 시작됩니다. 그 추운 겨울에도 하나님의 손길은 쉬시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때를 향해 전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부조리한 세상을 바라보며 그 때를 기다리다가 지친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2:3)
정한 때가 있다고 했어요. 악한 자를 낮추시고, 선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세요.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믿으시면 아멘합시다.
그러므로 시인은 확신가운데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9절과 10절 말씀입니다.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시75:9~10) 할렐루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쌍둥이의 차남으로 태어나, 누구보다 하나님의 복에 대한 갈망으로, 그 욕심에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빼앗고자 했고, 그러나 그 결과로 사랑하는 가족의 품과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야곱! 외삼촌 라반 집에서 노역의 날이 20년입니다. 부자가 되었어요.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또 다시 형의 복수를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과거의 잘못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던 것이었어요.
가족과 식솔과 가축 떼를 다 시내 건너 편으로 보낸 야곱은 홀로 남아 기도합니다. 밤을 새워 경야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나타났고 씨름을 하게 되었는데,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씨름 하였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놓지 않으니, 떠나가려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어긋나게 했어요. 그래도 놓치 아니했어요.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그때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다.” 그의 인생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꾀쟁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불리우게 되었고, 민족을 이루어되었으니, 이스라엘 나라가 되었습니다.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20년간의 고난의 세월을 보낸 후 그를 변화시킨 하나님! 그러므로 축복의 통로로 세우시고,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땅 일곱 족속들 앞에서, 야곱의 손을 높이 들어 민족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을 찬미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살아갑니다. 기다리는 하나님의 때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1절의 고백처럼,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오늘도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소망으로 기도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때를 할렐루야로 맞이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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