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하 강해 03] 아! 모리아 산이여! 골고다 언덕이여!
- 정효주 2025.5.29 조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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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역대하3 : 1 - 9 | 개역개정
- 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 2.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지 넷째 해 둘째 달 둘째 날 건축을 시작하였더라
- 3.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놓은 지대는 이러하니 옛날에 쓰던 자로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며
- 4. 그 성전 앞에 있는 낭실의 길이가 성전의 너비와 같이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백이십 규빗이니 안에는 순금으로 입혔으며
- 5. 그 대전 천장은 잣나무로 만들고 또 순금으로 입히고 그 위에 종려나무와 사슬 형상을 새겼고
- 6. 또 보석으로 성전을 꾸며 화려하게 하였으니 그 금은 바르와임 금이며
- 7. 또 금으로 성전과 그 들보와 문지방과 벽과 문짝에 입히고 벽에 그룹들을 아로새겼더라
- 8. 또 지성소를 지었으니 성전 넓이대로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도 이십 규빗이라 순금 육백 달란트로 입혔으니
- 9. 못 무게가 금 오십 세겔이요 다락들도 금으로 입혔더라
아! 모리아 산이여! 골고다 언덕이여!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함에 있어 그 장소를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 산으로 정하였습니다. 이 모리아 산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올라갔던 산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친히 지정하신 곳입니다. 창세기 22장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그때 아브라함은 브엘셰바에 살고 있었으니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까지 가는 길이 사흘 길이였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장차 일어나게 될 예수님의 구속의 사건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독자 예수 그리스도가 제물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리아 산상, 성전 가까이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죄를 사하시기 위해 어린양 제물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할 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멈추게 하셨어요.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죽이려는 것을 멈추고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숫양이 있는데 그 뿔이 풀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이삭 대신 그 양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그 양의 대속이 이삭을 구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인류를 구원한 것입니다. 그곳이 모리아 산상이었어요. 그 사건을 가리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르기를 “여호와 이레”라. 그 뜻이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무슨 뜻이겠어요?
모리아 산은 여호와의 산이요,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있는 곳입니다. 동시에 모리아 산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곳입니다. 제사를 받으시고, 예배를 받으시고,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시는 곳! 구원을 베푸시는 장소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곳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니 솔로몬이 모리아 산을 택한 이유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나타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당연하지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준비하신 곳,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바로 그곳 아니었겠습니까?
다윗이 통치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했으니 인구조사였습니다. 선한 의도의 인구조사가 아니었어요. 역대상 21장의 내용이지요.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21:1) 사탄의 궤계에 넘어갔던 것입니다. 사탄이 다윗을 충동합니다. “전쟁에 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장정들이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라!” 사탄이 충동하는 것이니, 다윗이 하나님께 여쭤보든지 아니면 “사탄아 물러가라~!” 대적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다윗이 방심하여 사리판단이 온전치 못했습니다. 왜 방심했을까요?
다윗이 교만했습니다. 전쟁에서 그처럼 승리를 이루고, 영토를 확장하고, 안정이 되니, 이제 다 이룬 줄로 생각을 해요. 그러므로 유지해야 할 ‘긴장’을 놓아버리고 영적으로 잠이든 것입니다. 사탄이 그때를 틈탄 것이에요. 성경은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말씀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늘 틈을 노리는 사탄입니다. 주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14:38)
그러면 다윗이 전쟁에 임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장정의 수를 파악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일까요? 전에 나누었던 내용인데 복습을 합니다. 다윗의 그 모습은 전쟁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군사적 파워를 가늠하고, 결국 자신과 자신의 군대를 의지하고자 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일이 잘되고, 부유하고 풍요로워 지면, 교만해지기 쉽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내세우고자 하는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수록 더욱 조심하며,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의 매를 드십니다. 다윗의 잘못을 깨닫게 하십니다. 전염병이 돌고 백성이 많이 죽었어요. 다윗이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청했어요.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그렇게 철저히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선지자 갓을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는데, 그 장소가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땅을 금 6백세겔을 주고 사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 하늘에서 불이 임하였어요. 하나님의 응답이죠. 그러므로 그 땅에 온역이 다 그쳤습니다.
그처럼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는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한 다윗은 감격에 겨워 외쳤습니다. “이곳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전(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대상22:1)
그곳이 바로 모리아 산이었던 것입니다. 우연히 일치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곳, 바로 하나님의 집이 세워질 장소를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 때부터 정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개개인의 삶에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나라의 운명과 세계의 흥망성쇠에도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한 안목과 지식과 경험으로는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을 다 헤아리기가 어려워요. 지나고 나서야만 그 뜻을 아는 존재에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공의로 주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로마서 8장 28절에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편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을 바꾸실 수 있기 때문이에요. 뜻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 Absolute Will of God!은 사람이 바꿀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죄 많이 짓고 악하고 못되게 살다가, 죽을 날이 다가오니 그 마음에 두려움이 일어 뒤 늦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해요. “지옥이 없게 해주세요. 천당만 있게 해주세요.” 백날 기도해 보세요. 공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한 영혼을 사탄이 아무리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믿음에서 떨어져 지옥가게 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뜻은 안 바꾸세요. 욥이 그런 경우 아니겠습니까? 그 모진 환난 풍파 속에서도 뭐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1) 그 믿음이 어디 가나요? 하나님께서 택한 자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결국 그 모든 환난을 통해서도 사탄이 어쩌지를 못해요. 전화위복의 역사가 나타나고 욥은 더 사랑받고 복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이처럼 한번 자녀 삼으시면 그 사랑에서 끊어 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경우는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본래 계획하신 뜻을 돌이키실 때가 있습니다. 이를 신학적 용어로 Relative Will of God! ‘상대적인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요. 성경에서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이나 결심을 멈추시고, 다른 방향으로 마음을 바꾸셨다는 의미에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는 경우는, 사람의 회개, 특별한 상황, 혹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낼 때 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을 진멸하고 새로운 민족을 세우겠다고 하셨지만, 모세의 중재 기도 이후 뜻을 돌이키시고 백성을 용서하셨어요. 니느웨 백성들이 금식하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릴 심판을 멈추시고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심한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거두어가실 것을 주의 종을 통해 알리셨어요.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용서와 자비를 구하며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본래의 뜻을 돌이키사 히스기야의 생명을 십오년이나 더 연장하셨습니다.
이 새벽에도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소망이 여기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이처럼 새벽으로 기도의 제단을 쌓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전화위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전이 어디에 세워져야 하는가? 모리아 산상이다. 그 장소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으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던 곳이요, 그곳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로 인하여 백성이 죽어갈 때, 번제와 화목제로 제사를 드리므로,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여, 다윗의 죄가 사하여 지고, 기도의 응답을 받은 장소요, 나아가서 온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갈보리 산, 골고다 언덕이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모인 주의 백성이 기도하는 곳에 친히 임재하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이 새벽에도 기도하는 이 자리가 바로 그곳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응답의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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