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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강해 04] 방해를 물리치고 승리하려면
운영자 2024.12.24 조회 37

[성경본문] 느헤미야4 : 15 - 20 | 개역개정

  • 15.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였는데
  • 16.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 19. 내가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먼즉
  • 20.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방해를 물리치고 승리하려면

 

이스라엘의 영적인 센터인 예루살렘에는 솔로몬이 세운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중심으로 곁에는 왕궁이 있었고, 성안에는 백성들이 사는 가옥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곽에는 성전과 성안에 사는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성벽이 있었어요.

 

그러나 주전 586년 바벨론 침공으로 인해 성전과 성벽은 무너졌습니다. 이후 성전은 재건이 됩니다. 바벨론 왕국을 무너뜨리고 그 지역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에 의해 70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학자 학개와 이스라엘인들, 그리고 이어 2차 포로귀환에 돌아온 제사장 에스라와 유대인들이 온 힘을 다하여 협력하여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성전 이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 일컬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외곽 성벽은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어요. 그 소식을 먼 나라 페르시아에서 듣게 된 애국자 느헤미야는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왜 그 모습이 되었는가? 그는 알고 있었어요. 모세를 통하여 내려주신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와 계명을 어긴 결과 그렇게 된 것이에요.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끌어안고 회개하며 금식하며 주의 은총을 간구했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장으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어요. 느혜미야는 자신의 슬픔의 이유를 말하게 되었고, 아닥사스다 왕은 그를 돕고자 했습니다. 그의 은총을 입어 느헤미야는 자신이 고향,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삼일간 무너진 성벽과 불탄 성문들을 관찰을 하고, 치밀하게 계획한 성벽중건을 실행하고자 했습니다. 이 일은 아주 커다란 프로젝트로서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성내 주민들이 합세해 주어야만 이룰 수 있는 큰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성내 주민들을 격려하고 설득하여 성벽을 중건하고자 했어요.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그 내용이 217절과 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2:17~18)

 

네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 믿었습니다. 중건의 때가 되었다고 믿었어요. 더욱이 재정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이 도와 준다고 하니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성벽을 41개 구역으로 나누어 모든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후손들이 배당받은 구역에서 성벽중건과 불탄 성문을 새롭게 세우고자 했습니다. 이 내용이 3장의 내용이에요. 이 협력의 모습이 주욱 열거되어 있는데요, 가장이 많이 등장하는 문구가 그 다음은 누가 맡아서 일하고, 그 다음은 누구 맡아서 일하고, 그 다음은 누가 맡아서 일하고.......” 그런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죠.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문제가 터졌어요. 이스라엘 땅 이웃에 위치한 이방 나라와 부족 중에서 이스라엘이 이렇게 성벽 재건하는 모습이 아주 못마땅한 것에요. 그들은 누구였는가? 219절에 보니 호론 사람 산발랏, 암몬사람 도비야,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에요.

 

방해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처럼 페허가 되어 있으니 자신들에게 위협적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세우고 이제 성벽을 재건하니 과거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과 이후 20명의 왕으로 이어진 유다왕국의 모습으로 다시 부흥하는 것 아니냐? 그러면 이웃에 있는 자신들 나라에 큰 위협이 되지 않겠느냐? 현재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중심추가 다시금 재건되게 될 이스라엘 유다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 하는 예측 때문이었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성벽을 세울 수 있겠느냐?” “그럴 능력이 없는 자들 아니냐?” 아주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비아냥 거리고 업신여기며 기를 죽였습니다. 그런 말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기분일까요? 사기가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우리의 삶 가운데도 그런 일이 있어요. 한 신임선교사가 네팔에 도착했어요. 자동차를 정비하고 엔진을 고치는 1급 기술 자격증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현대자동차가 많이 수입되고 있으니 현대차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전문인 선교사는 그 가능성에 대해 아주 긍정적이었어요. 그런데 먼저 와서 사역을 하고 있었던 한 선교사와 우체국 앞에서 만나게 되어 제가 이 신임 선교사를 소개를 해 주었더니 자세히 듣지도 않고, 하는 얘기가 그가 안될걸! 안될 거야! 일이 그렇게 맘처럼 쉽게 되나~! 안돼~! 안돼~!”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어요. 그의 부정적인 말을 들은 신임선교사가 감정 조절이 안되고 얼굴이 벌개지고 씩씩 거렸어요.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구인데 저렇게 말할 수 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원래 저렇게 늘 부정적인 말로 남 기죽이는 일이 취미니까 너무 신경쓸 거 없어요!”

 

그 전에 제가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우체국에서 소포를 찾다가 만났는데 먼저 제게 하는 말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셨다고? 그거 학위 땄다고 여기 네팔에서 신학교가 제대로 운영이 되나? 안될걸~!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학위 땄다고 교만하면 안돼지~!” 그의 말에 제가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었어요. 한편 속으로는 부아가 올라와서 그래? 그래 어디 안 되나 두고 봐라~!” 보란 듯이 더 열심히 해야지! 다짐에 다짐을 했어요.

 

성도 여러분! 누군가 누가봐도 선한 일을 하고자 노력하고 힘쓸 때는 격려의 말을 해주기 바랍니다. 그거 안될 걸~! 안될 거야~!” 그러면 안 돼요. 그렇게 부정적으로 남을 폄하하며 말하는 사람치고 잘되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요.

 

호론사람 산발랏이 뭐라고 비난합니까? 41절과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4:1~2) 한 마디로 너희는 할 수 없다!”고 폄하합니다.

 

암몬사람 도비야는 뭐라고 하나요? 느헤미야 43절입니다.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4:3) 무슨 뜻이겠어요? ? 성벽을 쌓는다고?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성벽같지도 않은 성벽을 쌓겠지~!”

 

그렇게 비난을 해도 성벽재건을 포기하지 않아요. 어떻게 대응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모습이 믿는 자의 모습이에요. 함께 대응하는 모습을 45절 말씀을 통해 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4:4~5) 무슨 뜻이겠어요? 그들이 주를 노하게 하였으니 그들이 하는 욕이 그들의 머리에 돌아가게 하시고, 그들이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옵소서!

 

상한 속 마음이 드러나는 원색적인 내용의 기도입니다. 다윗도 비슷한 기도를 했어요.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정말 선한 자를 대적하는 나쁜 모습이라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손 보실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눅들지 않는 거에요. “그래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 열심히 기도하며 더 열심을 품고 성벽을 쌓습니다. 때로 우리에게도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코로나19 재난이 터지고 나니까 대면예배는 드리지 못하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되니까 교회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사회학적으로 교회를 연구하는 연구소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이제 대면예배의 시대는 끝났다. 지속되는 코로나를 통해 비대면 예배에 익숙해진 성도들은 그 편리함에 코로나가 끝나도 온라인 예배를 택할 것이다. 기독교회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될 것이다. 모이지 않는 교회가 될 것이라는 거에요. 심지어는 이와 같은 주장을 철썩같이 믿어 온라인 교회까지 등장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함께 모이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예배드리고 끝이에요. 헌금도 온라인으로 보내면 되는 거지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됐습니까?

 

물론 없지 않아 그런 분들 있어요.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교회갈 생각을 안하는 성도가 있어요. 그러나 그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시금 대면예배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는 예배 같지가 않은 거에요. 마음에 감동이 임하지 않고 무엇보다 함께 모인다고 하는 공예배의 의미가 사라지니, 어떤 연합사역은 할 수 있겠어요? 서로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겠어요? 믿음의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겠어요? 없어요.

 

무엇보다 성경이 말씀하지 않습니까? 말세에 환난 가운데 있는 교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5)

 

이처럼 방해 공작이 지속되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더욱 집중하여 성벽을 세워가니, 어떻게 합니까? 7절과 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4:7~8)

 

그렇게 쳐들어와서 일을 그르치게 하려하자 겁을 먹고 성벽재건을 중단한 것이 아니었어요. 17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4:17~18) 침략에 대항하여 무장을 하고서도, 이루어야 할 성벽재건의 일을 계속해서 이루어 간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와 같은 방해와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승리하려면, 세가지 필요조건이 있어요.

그것은 첫째로, 성벽중건 프로젝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둘째, 기도하므로 건축자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요,

셋째, 함께 한 마음, 한뜻으로 연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교회에서든 사업장에서든 어떠한 공동체를 위한 프로젝트를 이루고자 할 때, 꼭 기억하고 적용해야 할 필수요소가 되겠습니다. 가슴이 간직하고 실천하시므로 마침내 이루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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