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헤미야 강해 03] 믿는 자로서의 바람직한 리더쉽 II
- 운영자 2024.12.24 조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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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느헤미야2 : 15 - 20 | 개역개정
- 15.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 16.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믿는 자로서의 바람직한 리더쉽 II
어제 우리는 믿는 자의 바람직한 리더쉽은 어떠해야 하는가? 무너진 성벽 재건을 위해 준비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통해서, 그 바람직한 자격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세 가지로 보았어요. 첫째, 기도하며, 기회를 기다릴 줄 아는 리더쉽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기도하면서 계획하는 리더쉽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구체적으로 전략을 세우는 리더쉽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지는 네 번째 리더쉽은 비전을 이루기 위해 동기부여하는 리더쉽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성전 중건의 구체적인 전략을 세운 후에 비로소 예루살렘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을 공감하고 체휼하며 그들 속에 자신도 한 사람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를 사용합니다. 17절의 내용이에요.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느2:17)
“우리가 당한 곤경”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자!”고 백성들을 격려했습니다.
지도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나’라는 단어와 ‘우리’라는 단어는 많이 다릅니다. 보스는 ‘나’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리더는 ‘우리’를 강조합니다. 보스는 ‘나’를 먼저 챙기려하지만 리더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유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리더쉽 분야에서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한 풀러신학교의 리더쉽 교수였던 로버트 클린턴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리더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지도자란 하나님으로부터 능력과 그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정한 그룹 또는 공동체로 하여금, 그 공동체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것을 이루도록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다.”
리더는 어떤 사람 이어야 하는가? 1)하나님의 능력과 능력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2) 그룹 또는 어떠한 공동체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것을 이라고 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거에요. 공동체가 함께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는 자입니다.
3) 그 공동체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영향을 끼치는 자가 리더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모은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의 당위성을 피력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준비시키셨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인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움직여 이 큰 프로젝트를 지원케 하셨으며 그 일로 자신이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음을 알렸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느헤미야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으며 그 역사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역사가 일어날까요?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느2:18) 그러자 그들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리더쉽은 독단적인 모습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비전은 모두를 위한 것이니, 모두의 유익을 위하여,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고 힘을 북돋우며, 함께 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섯째, 재능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여 목적을 성취하는 리더쉽입니다.
느헤미야 3장으로 가서 1절과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느3:1-2)
성벽을 중수하고 보수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3장 전체가 그 내용입니다.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그 다음에는” 이에요. 그 다음에는 누가, 그 다음에는 누가, 그 다음에는 누가...., 모두가 동참하여 일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교회가 평안 가운데 든든히 서 가기 위하여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진행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십시일반 동참하는 일들도 있어요. 가령 산불로 인해 어려움을 입은 자들을 돕자! 지진으로 어려움에 처한 저 먼 나라 이웃들을 돕자! 겨울이 더 추운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을 선물하자! 그럴 때 작은 액수라도 동참해야 합니다. 열외가 되면 안돼요. 동참하면 믿음이 자라나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통해 동참한 자들에게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있어요. 그 복에서 소외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바라보는 안타까움이에요.
함께 해야 해요. 함께 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 자는 재능을 십분발휘하게 하였어요. 3장의 마지막 절, 31절과 32절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느3:31~32)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다고 했어요. 금장색은 금을 다루는 자들이에요. 여기에서 상인들은 건축 상인들이에요. 그들은 그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생업으로 사는 전문인들이에요. 그 외애도 돌과 나무를 조각하고 돌을 크기에 맞게 자르는 전문인들이 함께 협력했던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감사한 것이 우리교회의 건물 관리 보수를 그 분야에 전문적 기술을 가진 성도가 열심히 감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열심히 있는가? 하는 것이에요. 주를 기쁘시게 하고자 헌신을 마다하는 믿음입니다. 기술이 있다고 다 그렇게 시간 내어 충성하는 것 아닙니다. “내게 주신 이 기술을 통해 주를 기쁘시게 하기 원합니다! 주의 몸된 교회가 든든히 서가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이렇게 41개 구역으로 나누어 전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들이 열심을 내고 헌신하여 최선을 다해 성벽을 중건하니 52일 만에 그 엄청난 프로젝트를 다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 마음, 한뜻으로 서로가 협력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래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으니라!” 같은 맥락에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
작은 단위인 구역에서부터 큰 단위인 연합남선교회 연합여선교회 제직회 공동의회가 하나가 되어 세운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면, 주의 크신 영광의 역사가 교회 안에 나타날 것입니다.
여섯 번째, 장애물들을 믿음과 기도로 극복하는 리더쉽입니다.
이 성벽중건 프로젝트에 어떤 장애물이 있었나요? 함께 2장 19절과 2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느2:19~20) 변방 세력자인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방해세력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의 영광이 나타나는 큰일을 이루려 할 때는 방해세력이 있다 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이 방해와 연관하여 몽고 메리 보이스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대는 실패하지 않고 성공한 경우에는 거의 항상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반대가 일어나면,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무슨 뜻이겠어요. 쉽게 이루어지는 위대한 일은 없다. 아니겠습니까?
느헤미야는 대처합니다. 어떻게 대처하는가? 단적인 모습을 4장 16절 17절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느4:16~18) 무장을 하고 건축을 합니다. 파숫군을 세워 망을 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어요. 2장 20절 느헤미야의 고백대로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 믿음이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믿음이요, 이 믿음은 기도를 통해 주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4장 4절 이하에 기도하는 느헤미야와 기도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느4:4~5)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도 우리가 기도합니다. 기도하시므로 모든 방해와 장애물을 이겨나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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