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강해 64] 꿈을 이루기까지
- 운영자 2024.8.14 조회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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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47 : 27 - 31 | 개역개정
- 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꿈을 이루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야곱의 삶이 저물어 갑니다. 그의 노년의 삶은 행복했어요. 오늘 성경본문 47장 27절은 한 문장으로 고센 지방에서 인생의 마지막 때를 사는 야곱의 삶이 복된 삶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창47:27) 아멘!
이때로부터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의 이름이 이때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이라는 뜻이죠. 야곱 개인에게는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 이름의 뜻은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원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라는 뜻이지만 어떻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겠습니까? 그래서 그 뜻을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에 인정받은 자”라고 의역을 했습니다.
이어 고센 땅에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고 표현하였어요. 이는 마치 야곱의 “생의 찬가”처럼 들려집니다. 적합한 업을 갖고 일을 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이 땅에서 복된 삶이 틀림이 없습니다.
이 새벽에도 취업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생육을 위하여 자녀나 며느리의 태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주 안에서 만남을 위해 기도하는 형제, 자매가 있습니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 번창하기를 원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이 야곱의 노년의 축복이 모두에게 임하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불러낸 하나님, 땅과 후손과 민족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에 주어졌습니다. 25년 뒤에 100세 되던 해에 이삭을 보았습니다. 이삭은 60세에 야곱을 낳았고 이어 180년을 살았습니다. 야곱은 고센 땅에서 17년을 살고 147세로 삶을 마감합니다. 계산을 해보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민족의 꿈은 232년 만에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200만의 민족으로 되기까지는 애굽에서 400년을 보낸 이후에 되었으니 도합 63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장구한 세월이에요.
우리는 이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은 참으로 더디 걸리는 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민족으로 형성되기까지 그러한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장차 이루어질 민족의 꿈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3대를 걸쳐 아니 요셉까지 하면 4대를 걸쳐 같은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결코 두 마음을 품지 않았어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믿음의 사람들의 가져야 할 삶의 교훈을 얻습니다.
그것은 독일의 시인이었던 요한 괴테가 한 마디로 표현했습니다. “Life is not speed but direction"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습니다. 개인에게 주신 꿈이 있고 공동체에게 주신 꿈이 있어요. 그 꿈을 소망 중에 바라봅니다. 공동체의 꿈은 대를 이어 이루어져 가고, 개인의 꿈은 이 세상에서 그 개인이 눈을 감기 전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꿈이든 개인의 꿈이든, 둘 다 분명한 것은 원대한 꿈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시간이 더디 걸릴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제대로 좌표를 잡았는가?
항해사가 캄캄한 밤바다에서도 별자리를 보고 좌표를 잡으면 그 다음에는 전진해 갑니다. 중간에 바꾸면 낭패입니다. 바로 방향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은 특권이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도 꿈을 세웁니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쫓아온 꿈은 대부분이 자신의 야망에서 비롯됩니다. 개인적인 욕심이 담겨져 있어요. 그러니 방향성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 성공을 향한 전력투구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추합니다. 끝내 추락합니다. 요즈음 정치권의 모습을 보십시오. 너무 추합니다. 어찌보면 자업자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 믿음의 사람은 특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방향성이 틀림이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 믿음의 사람의 꿈은............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 아브라함을 불러서 미래의 꿈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 스스로가 가진 것이 아니에요. 밤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시면서 꿈을 새롭게 다짐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세요. 그러니 그 방향은 이미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중요한 것은 주께서 바라시는 바를 믿고 순종하며 전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속도를 알지 못해요. 시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어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음의 사람의 꿈, 그 방향도 목적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믿음으로 전진합니다. 그 결말은 해피엔딩이에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따라서 하십시다. “하나님께 영광! 나에게는 보람! 이웃에게는 유익!”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꿈은 그 결과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나에게는 보람이요, 이웃에게는 유익이 됩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서도 그리고 삶을 통해서도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늘 재 확인이 됩니다. 기도할 때마다 더 또렷해집니다. 그러므로 이런 명제가 주어집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꿈은 더 또렷해지고, 기도하는 자는 결코 방향을 잃지 않는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꿈을 이루기까지 기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이 새벽제단을 쌓으시는 가운데 꿈을 이루는 간증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하나님이 꿈이 나의 꿈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로 매진하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꿈이 이루어지는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야곱이 자신의 임종을 미리 보고 있습니다. 영성이 깊은 자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날을 미리 내다 봅니다. 저의 어머니도 그러셨어요. 제 나이 열 한 살, 늦겨울에 제 머리에 축복하시기 위해 안수 하시고 그 해 가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 어머님의 축복의 안수로 그리고 저의 서언으로 저는 결국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후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갈 길을 인도하시니.......,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임종을 바라보는 야곱의 나이가 성경에 보니 147세라고 말했어요.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창47:28)
그리고 147세에 야곱은 믿음의 조상들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품에 안깁니다. 그러니 임종을 일년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 요셉을 불러 당부합니다.
내용인 즉 “선영에 장사하라!”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과 그의 가족들이 묻혀 있는 땅, 막벨라 굴이 있는 곳, 애굽 땅이 아닌 약속의 땅, 가나안 땅, 헤브론입니다.
여러분, 아시는대로, 애굽은 약속의 땅이 아니에요. 그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땅과 자손과 민족을 약속했던 땅은 가나안 땅입니다. 한때 야곱은 외삼촌의 집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약속의 땅이 아니었던 세상 문명의 땅, 세겜 땅에 머무는 동안 엄청난 고난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딸 디나가 납치를 당하고 수치를 당하고, 이어 살육을 부르는 전쟁이 일어나고..... 철저한 회개 후에 하나님 앞에 약속한 땅, 하나님께서 지신한 땅, 벧엘로 올라가서야 평안을 가질 수 있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야곱은 약속의 땅에 대한 귀소본능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야 마음이 편할 것이었어요. 애굽에 있는 동안에는 언제고 나그네요 객이었습니다. 47장 9절에 자신이 나그네임을 그는 바로왕 앞에서 고백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창47:9)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는 우리 모두가 다 나그네입니다. 어디에 거하든지 나그네인 것은 우리가 가야 할 본향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짐을 쌀 때마다 느낍니다. 저는 더욱이 선교사로 필리핀 네팔 미국 그리고 다시 한국...., 스무번 이상 이사를 했어요.
그러나 늘 천국만 바라보고 살지는 않습니다. 이 땅에서 몇 년을 향유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땅에 거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광야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는 주님의 돌보심이 우리의 삶의 거처마다 함께 하십니다.
그래도 우리의 본향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날에 주님의 얼굴을 뵈올 때, 우리가 주님 앞에 송구하지 않도록, 우리는 오늘도 주어진 땅, 환경, 처소에서 주께서 주신 꿈을 온전히 이루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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