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강해 60] 용서의 근거
- 운영자 2024.8.7 조회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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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45 : 1 - 8 | 개역개정
-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용서의 근거
우리는 오늘 요셉의 용서를 봅니다. 요셉은 형들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냅니다. 그 장면을 상상해보면 제가 다 아찔합니다. 정을 억제하지 못해 바로의 궁까지 들릴 정도로 방성대곡을 하고 난 요셉은 드디어 형제들에게 다시금 돌아와 입을 열어 고백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창45:3)
형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어요. 무슨 말도 어떠한 말도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이때 요셉이 이어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자신들의 범죄, 22년이나 감추어 온 형제들의 그 끔찍한 범죄 내용을 알고 있을 사람은 자신들 이외에 그 누구도 없었어요. 오직 한 사람 요셉 이외에는......, 그러니 형제들은 요셉의 그 한마디 말로 그가 요셉임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요셉이 가나안 땅에 있는 아버지의 안부를 제일 먼저 묻습니다. “나는 요셉이라,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지난 시간 나누었어요. 요셉은 효자였습니다. 자신을 그처럼 사랑했던 아버지 야곱을 무척이나 그리워했습니다. 효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야곱이 요셉을 무지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었어요. 이전에 요셉의 어머니 라헬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야곱은 아내 라헬의 자리에 요셉을 정붙이로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보는 형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놀라기도 놀라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입니다. “아아~! 우리는 이제 죽었구나~!” 도망을 치면 치지, 요셉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또 말합니다. 4절 말씀이에요.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창45:4)
요셉이 이렇게 형들을 용서하기로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전장에 나오고 있어요. 애굽에 데리고 온 베냐민을 두고 가라는 요셉의 말에 넷째 형인 유다가 나섰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베냐민을 두고 가면 안됩니다. 그러면 아버지 야곱이 죽습니다. 요셉도 잃었는데 이제 베냐민까지 잃으면 그는 소망이 없습니다. 죽습니다. 그러시려거든 차라리 나를 잡아 가두시고 베냐민은 야곱에게 보내소서~!”
44장 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창44:31)
또 유다는 울면서 간청합니다. 44장 33절을 읽겠습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창44:33)
유다가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그처럼 요셉을 구덩이에 넣고 노예로 팔았던 자가 이제야 철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자기를 볼모로 잡아 두라는 그의 눈물어린 간청에 요셉의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어찌 용서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형들을 안심시키는 요셉의 말이 요셉의 착한 천성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와 같은 용서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착한 천성보다도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셉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45장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가족 모두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
세상의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 친히 개입하시고 관여하셔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요셉은 믿었기 때문이었어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당장 오늘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해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머니의 복중에 짓기 전에 먼저 아셨고, 그 이후의 삶을 알고 계셨으며,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이 땅에 거하는 동안에 되어질 일들을 알고 계시며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때가 되면 영원한 저 하늘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는 요셉의 신앙이 형들을 향해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한 것이었어요.
구체적으로는 7년간의 흉년이 올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요셉을 미리 애굽으로 보내어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시고 야곱의 전 가족을 살렸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은 미래를 준비하시고 아브라함과 약속을 했었습니다.
창세기 15장 12절 이하에 보면 아브람이 제물을 준비하고 해질 때에 깊이 잠든 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미래에 되어질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이러했습니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2~14)
하나님은 이미 아브람의 후손이 애굽으로 이주해 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비옥한 땅에서 400년을 보내게 될 것이며, 그러므로 그 땅에서 후손이 번성할 것이며, 나중에는 애굽왕 바로가 이 히브리 민족이 생육하고 번성하므로, 두려워하여, 다산하지 못하도록 괴롭게 할 것이고, 그러므로 그곳에서 다시금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인데, 나올 때는 큰 재물까지 가지고 나오게 될 것이다. 다 알고 계셨어요.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과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 온 주님의 선하신 손길, 지나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계시되어진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나타날 말세의 모습을 미리 보여줍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앞날도 알 수 있어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미 계시로 주신 말씀에는 7천여 개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약속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지켜 행하라! 그러면 내가 이루리라!” 무엇을 이룹니까? 선을 이루고 의를 이룹니다. 악은 무너지고 어둠은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이에요.
그러기에 우리 믿음이 사람들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그것이 계시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벽에도 주의 말씀을 듣고 사모하고 묵상하고 더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알았으면 믿어야 해요.
무엇을 믿는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의를 세우는 섭리입니다. 악한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가 뭔지를 알고 회개하는 자는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가 서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은 의를 세우기 위함이요, 의가 악을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십자가 상의 두 강도의 모습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되요. 하나는 회개함으로 용서함 받고 낙원에 이르게 되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누가 승리하느냐? 결국 믿음이 있는자에요. 구원은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선한 섭리를 믿어야 해요. 히브리서 11장 6절에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11:6)
셋째, 알았으면 그리고 믿었으면, 이제 행해야 합니다.
안다는 것은 지적인 동의요, 믿는다고 하는 것은 정서적인 동의라고 한다면, 행함은 의지적인 실천입니다. 이 지정의 세 가지가 함께 연합할 때 ‘전인’ 인 것이에요.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전인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사도 야고보를 통해 말씀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2:2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행함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느니라”(요13:17)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합니다. 이 알고 믿고 행하는 모든 과정이 나의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에요. 그러기에 보혜사 성령님께서 도우십니다. 말씀을 조명해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오, 믿도록 역사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시오, 행하게 하는 능력 주심도 성령님께서 힘주실 때, 비로소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새벽에도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으로 불러요.
“불길같은 성신여 간구하는 우리게 지금 강림하셔서 영광보여 주소서 성령이여 임하사 내 영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간구하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소서~!”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 요셉이 그러했어요. 그는 지나온 날들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통해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 꿈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니, 이처럼 기쁜 날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 계시로 주어진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복된 인생을 살아가도록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더욱 깊이 알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공의를 세우시고 빛가운데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환난 역경 속에서도 내일을 향한 소망의 끈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하여 이 새벽에도 여호와를 앙망하며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감으로 감화를 끼치시고 여러분의 영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새 힘을 주셔서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대로 되어지는 인생, 응답으로 살아가는 인생,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다 되시기를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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