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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57] 성숙하게 하시고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
운영자 2024.7.30 조회 72

[성경본문] 창세기41 : 1 - 16 | 개역개정

  •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 3.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 4.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 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 7.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 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 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 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성숙하게 하시고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

 

지난 시간에 우리는 요셉, 그도 사람인지라, 그의 연약한 점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사람을 의지했던 요셉의 모습이었어요. 세상의 권력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면서 그가 다시금 복직이 될 것을 알게 되자 요셉은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40:14)

그러나 그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아니했습니다. 세상이 그런 것입니다.

 

한편으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이러한 사람을 의지하는 모습을 변화시키시기 위해 그 감옥에서 2년을 더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411절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가 참 믿음이 있는 자요, 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인 것입니다.

 

그렇게 2년이 흐른 뒤에 요셉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애굽왕 바로가 꿈을 꾸었으나 아무도 그의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거에요. 그 꿈이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기도 해요. 그 내용이 이러합니다.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마리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데 그 뒤에 또 아주 흉악하고 메마른 일곱 마리 소가 살찐 일곱 마리 소를 먹었고, 또 다시 꿈을 꾸었는데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먼저 나온 그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는 모습이었습니다.

 

애굽 나라의 그 어느 술객도 그 꿈을 해석할 수 없었어요. 그때 그 술 맡은 관원장이 과거에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에 자신의 꿈을 해석해 주었던 요셉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바로왕에게 말합니다. 12절과 13절의 내용이 그것인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41:12~13)

 

그 술 맡은 관원장이 비로소 요셉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 그때 내가 그의 꿈 해석을 해준 은혜를 잊었구나!” 요셉에게 많이 미안했어요. 그래서 자책하며 9절에 그의 심경을 말합니다.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그 죄란 바로 요셉의 은혜를 저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요셉을 애굽왕에게 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왕은 즉시 요셉을 불러들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을 생각하고 그를 불렀다고 하는 것은 요셉의 삶의 전환점을 가져오는 아주 중대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이 하나님의 손길은 믿는 자의 삶에 친히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를 위하여, 믿지 아니하는 자의 마음까지 움직이세요. 하나님의 손길은 이처럼 개인의 인생 전체를 그의 손안에 두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인도하시며 이끌고 나가시는 것입니다.

 

어느 찬송의 가사처럼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값을 길 없는 은혜, 나를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두려움 없이 이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참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그의 손안에 두시고 늘 바라보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전적으로 그를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고, 주신 말씀 따라 순종할 때에, 우리의 인격이 인품이 성품이 변화되고 그렇게 성숙되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인생의 다음 장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십니다. 감옥에서 2년간의 훈련과정을 통해 요셉을 성숙시키신 이후에야 하나님께서 이 새 역사를 진전시키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사도로 쓰임받기 전에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이란 세월을 보내며 사역자로 거듭나는 훈련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기로 작정하셔서 그의 인생에 개입하시고 다멕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빛으로 그를 만나시고 회심시키셨지만 그를 성숙한 자로 훈련시키시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자, 믿는 자들을 남녀 할 것 없이 감옥에 잡아넣었던 자를 개과천선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쓰시지만 바로 쓰시지 않으신거에요. 3년의 시간을 두고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성숙한 모습으로 새롭게 빗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에요. 저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필리핀에서 7년간의 사역은 제 성품의 훈련의 과정이었습니다. 지진과 홍수, 그 홍수 속에서 배를 타고 가서 겨우 두 살 반된 어린 아들을 건져냈습니다. 그 트라우마로 아이는 밤마다 깨어나서 울었어요. 그런가하면 저는 큰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아내는 독충에 쏘이고 또 풍토병에 걸려서 병원에서 눈물로 밥을 먹던 날도 있었어요. 병원비가 없어서 동료선교사에게 병원 치료비를 빌려야 했습니다. 안식년을 기해 그렇게 꿈꾸고 준비했던 미국 유학길이 IMF로 닫히고, 필리핀에서 철수해서 고국으로 나올 적에 그 모습은 마치 패잔병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저와 아내를 다듬어 가시고 계셨어요. 좀 더 겸손해라. 네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세상을 보지 말고, 전적으로 나를 의지해라.” 선교지를 떠나던 해, 저는 선교지로 가는 산등성이 바나나 나무 그늘에 앉아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어언 듯 여섯 해 하고도 여섯 달, 복음 전하겠다고

땀으로 디딘 수많은 산등성이들

바나나 나뭇잎 그늘 아래 목을 축일때면

으례히 바라보았던 피나투보 산의 정상

내 생에 한번쯤 꼭 오르고 싶던 곳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겠지만

불어오는 바람, 내 등을 밀며

자꾸만 나를 내려가라 하네

 

그 깊고 깊은 수빅만의 바다

종의 피곤과 수고를 씻어 주던 곳

종의 상심과 못남도 넉넉히 받아 주던 곳

 

오늘도 나는 이름 모를 산등성이에서

피나투보의 정상을 바라보지만

그 심연의 바다가 나를 오라 손짓하네

이 산도 나를 거부하며 가라 하네, 저 낮은 곳으로

나의 등을 밀어대는 바람, , 이 바람도

내려가라고 내려가라고 저 바다에까지

바람, , 바람 성령의 바람!

 

나 이제 알았네 내가 갈 곳은

저 봉우리 아니요, 저 바다인 것을

낮고 또 낮아져야만 갈 심연의 바다

낮고 또 낮아져야만 할 저 은혜의 바다.

주의 성령께서는 상심한 저를 위로하시며, 은혜의 자리로 초대하였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듯이 복음전하는 자는 세상의 정상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받는 자리, 낮은 자리로 내려 가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삶의 깊은 고뇌를 체험한 이후에 다시금 재파송 받아 들어간 네팔에서는 하나님께서 사역의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사역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어요. 짧은 시간 안에 학교와 신학교를 세우고 교회가 세워져갔으며 학교는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저의 모난 성품을 다듬어 가신 하나님께서는 네팔에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오늘 요셉은 바로왕 앞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꿈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결코 자신이 내세우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자신은 죽습니다. 15절과 1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41:15~16)

 

바로는 말합니다. 너는 꿈을 능히 푼다더라 그런데 요셉의 말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답을 하시리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겸손한 자로 선 요셉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 훈련의 과정에 있습니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고, 사방으로 에워쌈을 당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저앉고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까?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시금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Total Commitment!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손을 잡아주셔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시고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 정으로 모난 돌을 깨뜨리는 것만큼 아픕니다. 많이 아픕니다. 그러나 욥이 환란 중에 고백한 것처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아멘!

 

이 확신에 찬 고백으로 소망 중에 내일을 바라보시며 오늘도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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