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절맞이 특새2] 어둠속에 빛 절망 중에 소망
- 운영자 2020.4.7 조회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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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룻기4 : 11 - 22 | 개역개정
-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 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 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어둠속에 빛 절망 중에 소망
우리 모두는 고난 주간을 보내며 이틀째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시긴 전, 오늘 화요일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이 날은 유대인들과 여러 주제에 관하여 논쟁하셨어요. 바리새인들과는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로, 사두개인들과는 부활 문제에 관하여, 그리고 율법 전문가인 서기관과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막 12:12∼34).
그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이웃을 위하여, 친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십자자의 길을 걸으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므로, 날 위하여,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고초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자신을 위해 당하는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숭고한 고난입니다. 그러기에 모두에게 감동이 되고 눈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자신 때문이 아니요)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자신 때문이 아니요)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그렇습니다. 이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는 그것입니다. 이 새벽에도 주님 주시는 음성은 사랑이 가득합니다. “내가 너희 대신 징계를 받았으니 이제 너희는 평화를 누리라, 내가 너희대신 채찍에 맞았으니 이제 너희는 나음을 입으라” 성도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주님이 주시는 나음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덧입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되시므로, 그 십자가의 영성으로 회복되어진 여러분의 마음에는, 거룩과 절제와 사랑이 넘쳐나서, 서로를 위한 섬김과 헌신과 나눔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피차간에 소중한 존재가 되어, 사랑 없어 각박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나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룻기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룻은 나오미에게, 보아스는 룻에게, 또한 룻은 보아스에게, 보아스는 나오미에게, 나오미는 보아스에게, 피차 간에 ‘헷세드’를 베풀므로, 즉 ‘인애’를 베푸는 모습으로 그 어려운 고난의 때를 해피엔딩으로 종식합니다.
룻기의 처음은 한 가정의 몰락이었습니다. 흉년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서, 이방인의 땅, 모압지방에 살았던 엘리멜렉과 그의 가족, 그러나 약속의 땅, 베들레헴을 떠난 저들에게 찾아온 것은 비극이었습니다.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비극의 여인 나오미는 생의 소망이 없었습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1:20) 그 이름의 뜻을 보면 “나를, 내 이름, ‘나오미’의 뜻대로 ‘환희’ 라 부르지 말고 ‘마라’ 즉 ‘쓴맛’으로 부르라.” 저가 그 이유를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오게 하셨느니라”(1:21) “빈털터리 거지가 되어 돌아오게 하셨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불쌍한 여인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녀의 말대로 비어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모압 여인, 이 책의 이름으로 정해진 여인, 룻을 붙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룻과 베들레헴 사람, 부와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보아스와의 만남을 주선하셨습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 결론의 부분에 이르게 됩니다. 보아스는 룻을 자신의 아내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열 명의 장로들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자 룻은 아들, 오벳을 낳습니다. 나오미는 손주를 품에 안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고통과 아픔과 시련과 근심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비극으로 시작된 한 가정의 이야기는 최종적으로 해피엔딩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고난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보아스와 룻의 아들 오벳은 장차 성군이 되는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가문에서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합니다.
평탄하지 않은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룻기의 이야기는, 고난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 바로 ‘헷세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헷세드’는 사람을 통해서 베풀어졌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인 룻에게,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그리고 부유한 자 보아스는 아무것도 없는 여인, 룻에게.......조건없이 베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람 간에 ‘헷세드’를 이루었고, 그 서로를 향한 긍휼이, 하나님의 성품의 실천인 것을 모두가 다 알게 하였습니다. 결국 고난을 이겨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 사랑 많으심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혹 여러분 중에 작금의 삶이 어렵거나, 인생의 어려운 때를 가고 계시다면, 그 자리에서 너무 오랫동안 주저앉아계시지 마시고, 이제는 일어서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원치 않게 어느 순간 보니, 내가 이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와 서 계십니까? 그러나 가운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다윗처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다시금 소망의 찬송을 부를 수 있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본문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장로로 이루어진 열명의 증인 앞에서 보아스는 천명했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나는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죽은 그녀의 남편 말론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울 것입니다.”
보아스의 그 서약에 그곳에 증인들이었던 장로들이 보아스와 그의 앞날을 축복합니다. 11절과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복을 빌어 주는데 야곱의 아내 라헬과 레아의 이름이 언급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자손을 갖는 것은 복입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127:3) 라고 말씀합니다. 더욱이 라헬과 레아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열두지파를 이루는 자녀들을 출산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야곱의 아내라 하면 레아가 먼저인데 장로들이 복을 빌며 왜 라헬의 이름을 불렀을까요?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받았으나 자녀가 생기지 아니했습니다. 레아가 여섯명의 아들을 낳고 또 딸 디나를 낳는 동안 라헬은 아무리 백방으로 노력해도 무자식이었습니다. 그것이 아픔이 되고 슬픔이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자신의 여종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기까지 하며 단을 얻고 또 납달리를 얻었겠습니까? 물론 나중에 요셉을 낳고 베냐민을 낳았습니다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명의 자녀를 갖지 못하는 라헬은 부끄러운 모습이 됩니다. 그래서 겸손해 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비로소 태의 문을 여십니다. 창세기 30장 22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고로”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들으셨다는 말씀입니까? “간청하는 라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때야 태를 여셔서 비로소 요셉을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룻의 모습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저가 모압 땅에 있을 때에 엘리멜렉의 아들 말론과 결혼을 하였으나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10년동안 자녀가 없었던 여인 룻이었습니다. 그러니 본인은 물론이려니와 시어머니 나오미도 더 외로웠지 않았겠습니까? 장로들이 그러한 룻의 모습을 보면서 복을 빕니다.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그 어려운 날, 슬픔의 날을 마치고, 이제는 아기를 가지라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아스의 이름이 더 유명해지기를 축복합니다. 12절에 다시금 출산의 복을 기원합니다.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그런데 말씀에 보니 다말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야곱의 아들 중 하나인 유다의 아내입니다. 저가 베레스를 낳았습니다. 다말을 언급하는 이유는 다말도 룻과 같이 이방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말도 룻과 같은 처지의 남편을 여윈 여자였습니다. 다말은 유다를 통해 베레스를 낳았는데 베레스는 다윗의 10대조 선조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계보에 이방 여인 다말의 이름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장로들의 축복은 장차 룻과 보아스를 통해, 왕이 없는 사사시대에,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기준이 없었던, 그 어둠의 시대를 종결하고, 마침내 다윗을 왕으로 세우셔서, 그 나라를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볼 수 있게 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이 룻기가 성경 배열의 위치에 있어서, 사사시대와 왕정시대 즉 사사기와 사무엘서 중간에 위치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윗왕의 왕 됨이 하나님의 예비 된 섭리와 계획에 있었음을 룻기를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 본문 18절에서 22절에 보아스로부터 다윗의 출생까지의 족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1절과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21.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그러니 룻은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고조 할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뿐만 아니라 가정의 주인이 되시고 믿음의 가문을 세워가는 일에도 이처럼 친히 관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이 모두 다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와 같은 믿음과 성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대대손손 아름다운 믿음의 가문을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오미의 기쁨이 회복됩니다. 룻이 아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비참한 모습으로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던 나오미 아니었겠습니까? 고향의 여인들이 그 몰골을 바라 볼 때에 몰라볼 정도 아니었겠습니까? “이이가 나오미가 맞느냐?” (룻1:19)그랬어요. 그런데 완전히 반전입니다.
그 여인들이 이제 완전히 그 형편이 바뀌어 버린 나오미를 봅니다. 손주를 안고 있는 나오미를 보며 진정어린 축복을 합니다. 14절과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너를 사랑할 것이다.” 나오미에게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 여인들이 또 축하합니다.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이 며느리가 곧 룻입니다.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아요. 이 장면을 상상만 해보아도 너무 마음이 기쁩니다. 나오미도 그렇고, 보아스도 그렇고, 그리고 룻도 그렇고......누구에게나 좋은 ‘샬롬’의 상태를 이루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이겨나가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같이 한음성으로 하시겠습니다. “믿는자들에게 고난은 이겨나가라고 주신 것이다.” 아멘~!
여러분, 이 좋으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약속의 땅, 베들레헴을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들레헴은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의 품입니다. 모압 땅은 세상입니다. 무엇을 배웁니까?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신앙에서 떨어지지 마시고, 그래서 교회를 멀리하고, 예배를 멀리하고, 기도를 멈추고......, 그리하지 마시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더 가까지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받을 징계를 내가 대신 받았다. 그러니 너는 평화를 누리라. 더 이상의 다툼도 충돌도 싸움도 이제는 다 끝이다”
“네가 맞을 채찍을 내가 다 맞았다. 그러니 너는 병중에서 나음을 입으라. 몸도 마음도 나음을 입으라. 웅어리지고, 상하고, 피멍이 든 가슴, 이제는 풀어 나음을 입으라.
온갖 질병이 나음을 입으라”
더욱 가까이 주님 앞에 나아가시므로, 더 깊은 기도를 드리시므로, 더 뜨거운 찬양을 드리시므로, 작정하시고, 결단하시므로, 한량없으신 주의 은혜가 넘치는 2020 부활절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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