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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44] 가난한 자를 도우는 자에게 주시는 福
운영자 2019.12.10 조회 1838

[성경본문] 시편41 : 1 - 13 | 개역개정

  •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 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 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 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 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 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 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 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 10.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이로써
  • 11.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 12.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 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가난한 자를 도우는 자에게 주시는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는 시편 41편은 시편 제1권의 마지막 노래가 되겠습니다. 시편은 전체가 5권으로 이루어져있어요. 쉽게 이해하시려면 시편은 다섯 권의 시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권은 1편부터 41, 2권은 42편에서 72, 3권은 73편에서 89, 4권은 90편에서 106편 마지막 제5권은 107편에서 150편까지입니다.

 

오늘까지 우리가 묵상하는 제1권은 인간의 행복, 타락, 및 회복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주로 다윗이 썼어요. 또한 그의 지도 아래 편집된 시들입니다. 2권과 3권은 히스기야와 요시아 왕 때에 편집된 것인데, 그 내용이 2권은 이스라엘의 파멸과 구속, 그리고 3권은 성전중심의 생활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4권과 5권은 에스라나 느헤미야 선지자 때에 편집되었는데, 4권은 광야생활에 관한 것이고, 5권은 말씀 중심의 생활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시편 1권을 마치면서 시편강해는 중단했다가 다시금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신약성경의 출발인 마태복음 말씀강해를 할 것입니다. 계절적으로 예수님 탄생하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를 더 깊이 알아가고, 묵상하므로 은혜를 나누고자 함입니다. 또한 우리가 성경을 읽어나갈 때에 한번은 구약의 한 책을 읽으면 그 다음에는 그 다음은 신약을 하고,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균형있게 읽어나가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내일부터 어느 책을 한다고 했습니까? , 마태복음입니다. 가능하면 마태복음 1장을 미리 읽어 오시기 바랍니다. 책걸이 떡을 해야 할까요? 아직 시편이 완전히 마쳐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고 마태복음으로 가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1권의 시작인 시편 제1편에 1절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기억하십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그렇게 시작하지요. 히브리어로 에세르 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그 뜻이 복 있음이여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1권의 마지막 편, 41편도 같은 에세르복 있음이여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니 1권 전체 41편은 각 시편마다 다양한 복과 복된 삶에 대해서 기록하였어요. 그리고 오늘 마지막 41편도 복 있는 자가 어떤 자인지를 알려주고 있는데 어떠한 자가 복이 있는가 가르쳐 주기를 가난한 자를 보살피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삶이 곧 복된 삶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1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로다 아멘!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아파서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도 특히 가장을 잃은 아내와 자녀들, 더욱이 양부모를 잃은 여윈 고아들은 더 불쌍합니다. 사회적 신분 때문에 압제당하는 자도 불쌍하고, 무슨 죄가 있습니까? 날 때부터 신체적 기능이나 지능적 기능이 정상이 아니라 장애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불쌍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모습이 귀결이 어디로 모아지는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고 저렇고 그래서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것이지요. 이 경제적 압박이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고 인생을 비관하게 만들고....., 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러니 성경은 불쌍한 자의 대명사로 생계가 어려운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 된 자를 언급하며 저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자주 말씀합니다, 야고보서에는 1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했어요.

 

경건을 이룬다 함은 최고의 계명이자 강령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이루는 것인데, 그 모습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들을 돌보는 것이요, 그리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 여기에서 세속에 물든다 고 하는 것은,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인데, 당시에 사회적 배경이 어려운 자를 돌보는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배만 채우는 자들, 오직 관심은 자기와 자신의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여, 어려운 자들을 외면하는 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세속에 물든 자 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는 없나요? 왜 없겠어요. 너무 많지요.

 

저는 선교지에서 24년의 세월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화산폭발 이재민들이었죠. 피나투보 산속에서 고향을 잃은 피난민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요. 배가 너무 고파요. 그래서 복음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그 일만 하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당장 먹을 것이 없는데....., 말씀이 들어가나요?

 

그러니 구제와 재활사역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쌀을 사서 줘야 하고, 한국에서 보내온 헌옷으로 나눠 입혀야 했고, 염소농장, 양계장, 바나나나무 망고나무 식목, 초지를 논으로 개간해서 논농사, 빵가게. 저의 가정 생활비는 최소한으로 살고, 저들이 집으로 찾아와요. 한꺼번에. 소위 세상말로 떼거지 라고 하지요. 사십 여명이 집으로 먹을 것 달라고 찾아오지를 않나, 또 겨울철이 다가오면 성탄절이 다가오니까, 카톨릭 국가이니 이때가 남들에게 적선할 때지요.

 

제가 살고 있는 곳에 아이타 산지 부족이 가족별로 기도를 받으러 왔어요. 수도인 마닐라로 구걸을 하러 가는 거에요. 온 가족이 다 같이, 엄마도 아가를 안고, 이제 일곱 살, 제 아내가 운영하는 유치원에 학생들이 또 그 보다 어린동생아가를 안고, 마닐라로 한,두어달, 구걸을 하러 가는 거에요. 안전하게 돈 많이 벌어 오게 해 달라고, 아프지 않고, 잘 다녀오게 해 달라고 기도 받으러 오는 거에요. 그러면 이 유치원 아이는 언제 공부해요? 기도하는 저의 가슴이 무너집니다. 뭐라고 기도를 해야 해요? 선교사의 고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두달 지나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지치고 상한 몸과 마음, 천대를 당하고, 피골이 상접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아픈 것은 아이들이 다쳐서 와요. 저들이 차가 무서운 줄 압니까? 교통법규를 압니까?

 

네팔에서는 여자로 태어났기에 버림받은 여자아이들, 부모를 잃은 여자 아이들, 열다섯명의 아이들을 두 살, 세 살 어릴적으로 키워서 지금도 대학생들로 공부시키고, 졸업한 아이들 중에 시집도 보내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정부가 해야지 왜 그런 일을 개인이 하느냐?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니 그렇지요. 우리나라 잘 살아서 끄떡 없습니까?

 

아닙니다. 작년도 우리 금천구는 서울 25개 구 중에 자살율이 3위입니다. 그 전에는 1위를 몇 년간 지켰습니다. 그 주 이유가 가난입니다. 재정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서, 특별히 독거노인도 그렇고 생계가 어려우니 비관 자살하는 거에요. 물론 그 뒤 배경에는 악한 영이, 사단, 마귀가 그들의 정신을 사로잡아서...., ~! 포기해라. 차라리 죽어, 죽으면 차라리 편해~!”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0:1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정부 탓, , 할 수 있어요. 정부의 일은 정부의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어려울 때에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누구? 곁에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부터 먼저 도와야 하겠습니까? 성경은 이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10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교회 안에 먼저 살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체로 만드셨으면 우리 영적가족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에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고아와 과부, 나그네 된 자,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경건을 이루는 것이라 이 진리와 교훈을 깨달은 자들이 구제헌금을 하고 또 알게 모르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그렇게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에요.

 

금년에도 성탄절이 다가오고, 우리 믿음의 가족들 중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들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차원에서도 돕고 있고, 또 너무나 감사한 것은 이 구제의 중요성을 아는 성도가 또 올해에도 봉투를 가져왔어요. 어려운 자들을 구제하는 곳에 써 주세요. 적지 않는 액수입니다. 그래서 돕고 정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조용히 비밀리에 하고 있어요.

 

이처럼 라고 하는 울타리를 넘어서서 우리,’ 누굽니까? 믿음의 가정들에게 까지 사랑과 관심으로 돕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웃,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다른 나라 영혼들까지, 이게 선교 아니겠습니까? 거져 주는 것이에요. , 하나님의 눈길에 저들 영혼을 바라보고 계시니, 주의 눈물이 거기에 있으니 우리도 사랑하는 거에요. 내가 먼저 받은 것으로 그 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있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도우면 내 심령이 먼저 기쁩니다. 세상이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기쁨이 평강이 가슴을 채웁니다. 그것이 첫 번째, 하나님의 응답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는 한 없는 사랑의 성품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유익이 있겠습니까?

 

, 오늘 말씀, 1절에 약속하시지 않습니까?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가난한 자를 도와라. 복이 임한다. 어떤 복이라고 했습니까?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재앙의 날어떤 날입니까? 굉장히 포괄적입니다. 내가 물질의 복을 주리라 그런 범주를 넘어서서 인생의 날에 환란이 있고 어려움이 거센 풍랑처럼 다가 올 때에 건지신다는 것입니다. 재정, 사업, 질병, 가정, 인간관계, 양육, 학업, 취업......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고난이 닥쳐 올 때에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결코 공짜가 없으세요. 저는 정말 수많은 간증이 있습니다. 어려운 나라 사람들, 생활비 깨서 도우니, 안식년으로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석사과정 2년차에 공짜, 박사과정 공부도 공짜, 저 한 사람 박사 공부시키느라 학교에서 장학금으로 1억원에 달하는 돈을 썼어요. 뿐만 아니죠. 안식년 때에 우리 두 아이들이 미국에서 가난한 아이들 다니는 학교에 보냈더니, 5만불, 6천만원이죠. 교회에서 장학금을 주어 최고 기독교 사립학교에서 공부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것으로 공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어려운 자들을 위하여 지갑을 열고 헌금을 하고 확신 중에 거하는 것입니다. 저 뿐이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도 간증하실 얘기가 많으실 거에요.

 

지난 달, 네팔 선교지 방문할 때에도, 가난한 선교지 간다고 하니 천불을 가져오신 권사님도 계시고, 우리 교역자 중에 한 목사님이 30만원 가져오시고, 또 제가 잘 알지 못해요. 고교동창의 부인이 500불을 보내오시고, 그런가 하면 함께 성도들 한끼 식사라도 하시라고,두 분이 봉투를 가져다 주셨어요.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선교지에 꼭 필요한 곳에 써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곳에 꼭 필요한 곳에 주고 왔습니다. 제가 복을 받겠습니까? 그렇게 주님의 마음으로 드린 자에게 복이 가겠지요. 그리고 저에게도 요만큼은~! 오지 않을까요?

 

2절에 은유적이지만 어려운 자를 돌아보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어떠한 복입니까? 지키신다 그랬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그랬습니다. 특히 해코지 하려는 악인들로부터 원수들로부터 지켜보호하신다고 그랬습니다. 뿐만입니까?

 

3절 말씀 읽겠습니다.

“3.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얼마나 감사한 복입니까?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있을 때마다 한 두 번이 아니죠. 한번만 아픕니까? 질병으로 누워 있을 때마다 라고 했어요. 그의 병을 고쳐주신다 할렐루야~!

 

오늘 저의 바로 위의 형님이 서울대학병원에서 뇌 안에 혈관에 이상이 생겨 꽈리처럼 볼록 튀어나온 부분 안으로 스탠트를 집어 넣는 수술을 합니다. 저는 어제 저녁에도 기도하고 이 새벽에도 합니다. 저가 선을 많이 배풀었습니다. 워낙 돕는 것을 좋아해요. 정이 많아요. 그러니 저는 기도하지요. 하나님 오늘의 말씀 약속대로 고쳐주세요.”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마지막 절 그 은혜와 복이 담겨져 있는 11절로부터 13절까지 읽고 마치겠습니다. 우리의 찬양이 되고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12.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13.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이 축복의 역사가 어려운 자, 가난한 자를 돕는 저와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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