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계시록 강해 08] 칭찬받는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 운영자 2019.5.14 조회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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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계시록3 : 7 - 13 | 개역개정
-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칭찬받는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이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 중, 여섯 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가 소개됩니다. 상상만 해도 좋은 교회입니다. 정말 닮고 싶은 교회이고, 우리교회가 정말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소원이 마음에 생기는 교회입니다. 다른 교회들은 한 시간에 마쳤지만 빌라델비아 교회는 내일까지 연결하여 두 번에 걸쳐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교회는 오늘날의 터어키에서 중부 고원 지대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부고원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은 곳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문이 몇 번 나오는데...., 8절에도 보면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 또한 7절에는 “열리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을 사람이 없다” 라고 말씀하지요.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바로 실감나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빌라델비아 도시를 사람들은 중부고원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 어려움이 있었으니 이곳에 지진이 자주 있었습니다. 주후 17년경에 소아시아 전 지역에 지진이 일어났어요. 그 때에 이 빌라델비아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는 성도들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지진에도 끄떡없는 건물의 기둥을 언급하며 말씀으로 전하십니다. 12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리.....”
이름이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빌라델비아 그러면 우리에게는 익숙한 이름이죠? 예, 미국의 동부에 있는 한 도시의 이름이 필라델피아입니다. 같은 이름이죠. 미국의 독립 선언문이 작성된 오래된 도시입니다. 이름이 길어서 미국 사람들은 ‘필라’ 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필라델피아 하면 그 이름이 뜻이 ‘형제의 사랑’이란 뜻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세워진 도시의 이름이 빌라델비아인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제패할 때에 이 터키 지역에는 버가모라 불리우는 왕국이 있었습니다. 왕이 이름이 유메네스 2세였는데 정치를 잘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동생인 앗탈로스 2세가 더욱 총명했어요. 그래서 왕인 유메네스 2세는 동생에게 내정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되니 동생 앗탈로스가 백성들의 인기를 많이 샀습니다. 로마 정부가 이 왕국을 점령하려하니 바로 이와 같은 관계를 이용하고자 합니다. 형제 사이만 갈라놓으면 될 것이라고 여긴 로마제국은 앗탈로스를 찾아가 형 대신 왕이 되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면 로마가 동생의 편이 되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그 유혹에 전혀 굴하지 아니했습니다. 그 동생의 모습을 보고 백성들은 감동이 되어 “빌라델비아~! 빌라델비아~!” “형제 사랑, 형제 사랑” 이라고 외쳤습니다. 형이 왜 이 사실을 모르겠습니까? 형 유메네스 2세가 죽을 때에 그 나라를 아들이 아닌 동생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왕이 된 앗탈로스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빌라델비아’ 즉 ‘형제의 사랑’ 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참 아름다운 얘기지요? 5월이 가정이 달인데, 우애가 가득한 자녀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부모의 큰 기쁨이 됩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겠습니다.
이 도시 안에 세워진 빌라델비아 교회, 형제의 사랑, 그 이름처럼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그처럼 교회를 박해했던 전통 유대인들 중에, 몇 사람이 찾아와, 이 교회의 교회됨을 인정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처럼 지역사회에서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빌라델비아 교회가 소아시아에서 가장 신실한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저는 아내와 함께 또한 연합여선교회 임원과 연합권사회 회장님과 함께 강원도 속초와 고성에 다녀왔습니다. 우리교회가 마련한 화재이재민 구호의연금 500만원을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산불화재로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들 중에 성도님 4분에게 각각 100만원씩 성금을 전달하고, 또한 이를 위해 어려움 당한 교회에도 이재민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사시도록 헌금으로 전하였습니다.
아~! 그 모습 정말 가 보지 않고는 상상이 않돼요. 전소된 집들이 즐비한대 얼마나 그 불길이 뜨거웠으면 현관 플라스틱 문틀이 녹아내렸고, 창문의 유리들이 다 녹아내렸습니다. 가축을 위한 막사들의 양철 지붕이 그 뜨거운 불에 다 녹아서 꾸겨질 정도였습니다. 집 안에는 그야말로 재 밖에 없을 정도로 싹 탔어요.
처음에는 그 엄청난 산불에서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생명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가, 겨우 몸만 빠져나왔으니 시간이 가면서 갈아입을 옷이 없지요. 써야할 가재도구도 없지요. 씻기는 어디에서 씻겠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생존 현실에 부딪히게 되니 빨리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앞날이 막막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아직 정부가 손길을 못미치고 있습니다. 더딘 것이지요. 제가 네팔에서 대지진을 경험해봐서 압니다. 재난이 터지면 도움이 손길이 절실한데, 정부는 전체적인 규모파악에서부터 원인분석, 보상과 배상 등, 늦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에 구호의 손길을 가장 먼저 펼치는 자들이 누군가 네팔에서는 그곳에 거주하는 각 나라 선교사들이 제일 먼저 뛰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고성에도 마찬가지였음에 제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고성 속초 사람들은 설악산에 있는 큰 절들의 영향권속에 있어서 기독교에 대해서 그렇게 마음 문을 열고 있지 않는데 막상 재난을 당하고 보니 불교보다는 교회들이, 전국에서 교회들과 신학교 동문들이 그 쪽 지역 교회들을 통해 구호품이 들어오고, 의연금이 전달되고, 식사를 제공하고, 그러면서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확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그래야죠.
미국에서는 재난 지역에 제일 먼저 달려가는 구호단체가 있으니 Salvation Army, 구세군입니다. 교회 아니겠습니까? 저들은 5분대기조까지 있어요. 바로 달려가지요. 담요부터 물, 옷가지 생필품 아예 준비해놓고, 제일 먼저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성탄절에만 땡그랑, 땡그랑, 자선남비로 받는게 아니에요. 미국의 많은 시민들이, 이 구세군 교회만큼 발빠르게 구호하는 곳이 없다 생각하여 엄청난 자선헌금을 그곳으로 보냅니다. 교회가 이래야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지역사회에 그러한 영향력으로 미쳤으니 사단의 회라고 하는 유대인들 중에도 이처럼 교회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사용하는 교회구나 절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지난 1997년도 IMF 때에, 경제 한파로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당할 적에 우리 개신교회의 대처능력이 너무 미진했습니다. 그때에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돕는 교회가 35%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지요. 반면에 로마천주교는 사랑의 쌀독 운동으로 먹을 것이 없는자, 언제든지 쌀이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베풀었습니다. 그 쌀독이 바닥이 난 적이 없다고 했어요.
우리교회가 부자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하는 교회 사랑하는 교회 축복받는 교회이 모토를 걸었으니 사랑해야지요. 금번에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온 성도들이 참여해서 저는 참 마음이 좋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바자회를 해서 기금을 마련하고 힘을 모았으니, 바라기는 이럴 때에 이 땅의 온 교회들이 힘을 합치면, 교회를 바라보던 세인들의 그 비판적인 시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기회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들이 마음을 엽니다. 이번일로 인해서 교회의 따스한 온정에 교회 안 나오던 가장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그 교회 목사님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지진의 환란 속에서 믿음을 지켰던 빌라델비아 교회, 그 교회는 그렇게 큰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부자 교회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거짓없은 형제사랑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소박한 사람들이 모여 합력하고 신실하게 믿음을 지켰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큰 칭찬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를 생각하면서 연관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그처럼 주님의 칭찬받는 교회 성도들의 모습으로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진리의 말씀으로 기초가 튼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부여잡고 지켰던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이 말씀은 다시 말씀드리면, “인내하게 하시는 말씀을 지켰은즉” 그런 말씀이에요. 저들이 믿음을 지킴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으니, 인내가 필요한데, 저들이 그처럼 인내하게 하는 그 핵심, 그 능력의 요소가 무엇인가하면 바로 하나님이 말씀을 꼭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도 환란의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쓰나미와 같은 재해가 닥쳐오고, 그 강풍에 산불과도 같은 내 능력 밖의 재난이 닥칠 때에 여전히 마음에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의 말씀, 인내의 말씀, 능력의 말씀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능력이요, 주님의 칭찬을 받는 비결이요, 축복의 필수조건이 됨을 확인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8절 말씀인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말씀드렸습니다. 이 교회가 그렇게 큰 교회가 아니었어요. 부자교회도 아니었어요.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말씀합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그럼에도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칭찬하십니다. 그 이유는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저는 우리교회가 그러기를 바랍니다. 무엇입니까? 말씀위에 견고히 서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계시로 주신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을 통해 감추인 것을 드러내 보이시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면 생각이 바뀝니다. 그 말씀 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그 말씀 속에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니 가치관이 바뀌고 세계관이 바뀝니다. 따라서 자연히 행동이 바뀝니다. 삶이 변화됩니다. 그러면 복이 임합니다. 내일 서두의 다윗의 열쇠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만, 하늘의 보물창고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주시기로 하시면 막을 재간이 없습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바탕은 바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내 심령에 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마치 땅 속 깊은 곳에서 석유를 퍼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 석유로 만들어진 휘발유로 경유로 모두 비싸고 좋은 타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땅 속 깊은 곳에서 기름을 파내는 일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든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기술자들이 땅속에서 기름을 퍼내기 않으면 아무리 좋은 차를 가지고 있어도 굴러가지 않습니다.
진리를 깨내기 위해서 목회자들은 홀로 고독한 시간을 갖습니다. 그 시간이 짧지 않습니다. 말씀과 씨름을 합니다. 고국에 들어와서 지난 3년이 지나는 동안 저는 새벽 2시30분이면 일어나서 기도하며 말씀에서 진리의 석유를 퍼냅니다. 오늘 새벽도 그랬습니다. 성도들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과 같이 인내의 말씀으로 승리의 말씀으로 어찌하든지 행복한 삶으로,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며 천국백성으로 살아가며 저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이 인내의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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