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하 강해 02] 리더쉽 교체: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 운영자 2019.1.25 조회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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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열왕기하2 : 1 - 11 | 개역개정
- 1.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리더쉽 교체: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일꾼을 세우셔서 그의 나라를 이루어가십니다. 그처럼 놀라운 역사를 감당하는 엘리야 선지자는 이제 세상에서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자신의 백성이 우상을 떠나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바라던 그 순수한 열정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를 시대에 필요한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이세벨 왕비와 함께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박해하던 아합왕에게 담대하게 직언을 했습니다. 그는 아합왕에게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나라에 3년간의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가뭄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생명을 포기하려고 하던 사르밧 과부와 그의 아들의 생계를 위해 기도하므로 곡식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였으며 그 아들이 병들어 죽었을 때에 기도하므로 생명을 살립니다. 이세벨 왕비의 힘을 얻어 엘리야를 대적하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갈멜산에서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제단의 제물을 태우는 일에 승리를 이룹니다.
또한 그가 혹독한 가뭄에 고통당하는 백성을 위해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전심으로 기도 할 때에 마른하늘에 구름이 생기고, 3년의 가뭄을 해갈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한때에 이세벨의 위협으로 영적으로 침체하여 우울증에 걸리고 차라리 자신의 생명을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던 때도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천사를 통해 먹을 것을 공급하시고 쉬게 하신 후에, 영산인 호렙산까지 부르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케 하시고, 다시금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이세벨과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갈취하기 위해 모함하여 나봇을 죽였을 때에 아합왕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고, 남왕국 유다왕 여호사밧과 더불어 아람을 치려고 할 때에 그러지 말라고 경고하였으며, 이를 어긴 아합왕은 전쟁터에서 생명을 잃습니다. 이후 그의 아들 아하시야 왕이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을 때에 여호와 앞에 돌아오지 않고 바알세붑이라는 우상을 의지할 때에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므로 아하시야왕이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는 실로 위대한 여호와의 종으로서 영적으로 패역한 이스라엘에 여호와 신앙으로 돌이키는 일에 크게 쓰임 받은 주의 선지자였습니다.
이제 그가 그의 사명이 다 했음을 감지합니다. 그의 후계자인 엘리사는 엘리야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을 감지합니다. 이는 그 시대에 여호와의 선지후보생들도 감지합니다. 이는 엘리야가 그만큼 연로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이제 선한 싸움을 다 싸운 엘리야는 세상을 떠날 것을 미리 알고 엘리사에게 리더쉽을 넘겨주려고 합니다. 그 방법은 엘리사로부터 떠나 자신을 감추는 것입니다. 선지후보생들로부터도 떠나서 자신을 감추는 것입니다. 그래야 엘리사가 역사의 무대에 서서 사명을 감당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청합니다. “너는 여기 머물라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같은 장면이 반복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또 6절에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벧엘로 또는 여리고로 또는 요단으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아니면 엘리야가 엘리사를 떠나기 위해, 자신을 감추기 위해 그렇게 거짓으로 한 말이었을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든 본인의 의도이든 떠나는 것이 리더쉽 이양에 적합한 모습일 것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사명을 다했다.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네가 서기 위하여 이제 나는 사라져야 한다.”
그가 사라지는 이유는 사역을 준비하는 선지후보생들이 그리고 그 시대의 세상 사람들의 초점이 엘리야가 아닌 엘리사에게 가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했습니다.
오랜 세월 선교사를 파송하고 운영해온 미국의 선교부들은 은퇴한 선교사를 선교현지에 놓아두지 않습니다. 은퇴를 하고 후임선교사를 그곳에 보내게 되면 은퇴한 선교사는 최소한 한텀인 4년, 또는 5년간 그 선교지에 가지 못하게 법적으로 제재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곳에서 신임선교사의 리더쉽을 견고히 세우기 위함입니다. 아직 리더쉽이 서기 전에 은퇴한 선교사가 현장에 들어가게 되면 현지인들의 마음이 이분화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도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 부작용을 보면서 제도화 한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의 유익한 점을 안 저는 7년간의 필리핀 사역을 마치고 후임선교사인 이경수 선교사에 사역지를 맡기고서는 한 텀 5년 동안 필리핀 선교지를 의도적으로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리더쉽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네팔에서 설립한 신학교,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하고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드려 세워 운영하던 신학교의 이사장직을 14년 만에 함께 사역하던 현지인 알빈 포커렐 목사님에게 이양한 이후로는 너무나 냉정하게 그곳과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저는 후원비를 모아 그곳에 보내며 기도로 지원할 뿐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신학교는 잘 서갑니다. 매년 신학교 출신 학생들로 교회가 없는 그 땅에 교회가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80여 교회가 새롭게 개척되었습니다.
오늘날 저는 한국교회의 병리현상 중에 한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 아픕니다. 그것은 대형교회의 세습입니다. 왜 굳이 그렇게 반대를 무릎 쓰고서라도 아들에게 또는 사위에게 리더쉽을 이양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그 담임목사의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정말 무대에서 사라집니까? 사라지지 않아요. 계속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들이 또는 사위가 원로목사님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새로운 리더쉽이 제대로 설 수 있습니까?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오늘 성경에 어찌하든지 세 번씩이나 “너는 여기 머물라. 나는 갈 곳이 있다.” 청하여 떠나려고 하는 엘리야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니 엘리사는 엘리야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으려고 합니다. 2절 중반에 보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 지라” 4절에도 그래요. 그리고 6절에도 그러한 엘리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처럼 엘리야의 곁에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엘리야가 세상 떠날 날이 가까오니 그 임종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의 성품과 사역을 곁에서 더욱 더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또는 지금껏 함께 사역을 해 왔으니 스승이 세상 떠나는 끝날 까지 함께 사역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이 말씀합니다. 9절에서 발견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무슨 말씀입니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적인 능력과 권세를 전수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세상 떠나기 전에 그 영적인 장자권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 장자를 불러 축복을 합니다. 그 자리에 꾀 많은 야곱이 위장을 하고 장자가 받는 그 축복 기도를 이삭으로부터 받습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었지요.
엘리야의 그 놀라운 능력,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비가 쏫아지고, 죽은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 다시금 살아나고....., 그의 선포는 사실대로 이루어져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이루어졌으니 그 능력을 전수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끝까지 붙어 다니고자 했던 엘리사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압니다. “그런 능력이 내 능력이 아니다. 그 능력은 100프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고 나는 그저 쓰임 받은 것이니 내가 줄 것은 없다.” 역시 엘리야는 영적인 거장이었습니다. 10절에 말씀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 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가 하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이지요. 엘리야에게 행하신 그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도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를 이제 마지막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엘리야입니다. 그러니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질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 불병거가 내려와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시는 그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되면 엘리사의 마음에는 큰 믿음을 갖게 될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인해가 안돼요.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는 초자역적인 현상, 기적이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그 모습을 보게 되면, 엘리야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 놀라운 능력으로 행하신다.” 그 강한 믿음이 그 마음에 확신으로 임하게 될 것이니,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또 역사하실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믿음’ 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오게 하는 필수조건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하늘의 역사를 이 땅에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고 하면, 믿음은 그 역사를 받기 위한 개개인의 필수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또한 말씀합니다.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11:1)
‘믿음’은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것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내가 오늘도 주님의 손길에 인도하심을 받아 새벽제단에 나와 있음을 믿습니다. 믿음은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주신 약속의 말씀이 성경에는 1,260개가 있습니다.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주여, 내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입으로만 “믿습니다. 아멘~!”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내 마음을 감동하실 때에 임합니다. 사건, 환경, 여건, 조건,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계신 모습을 보여주실 때에, 믿음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여 큰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와 율례를 얼마나 순종하며 사느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 새벽에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전심으로 기도하셔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입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의 응답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이 날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이 믿음이 갖는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에 넘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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