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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15] 첫 유월절과 어린 양의 피
운영자 2018.2.23 조회 2541

[성경본문] 출애굽기12 : 21 - 28 | 개역개정

  •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 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 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 28.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첫 유월절과 어린양의 피

 

 

하나님께서 강퍅한 바로왕의 마음을 꺾기 위하여 열 번째 재앙을 일으키셨는데 그것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처음 난 것을 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일이 일어남으로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별시키셨습니다. 그 생명이 죽지 않도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에게는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첫 소생이 죽는 화가 미치지 않게 하시기 위해 순종해야 할 지침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일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성경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어린양의 피를 문 인방, 즉, 문틀의 위쪽에 바르고, 또 좌우 설주, 즉, 문틀의 좌편과 우편에도 바르면, 어떤 모습일까요? 그 위치가 십자가 성호와 같습니다. 머리와 좌우 어깨입니다. 그러면 재앙이 집집마다 임할 때에 이렇게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건너뛰겠다. 그래서 逾 (넘어갈 유)에 越(넘어갈 월) 입니다. 그냥 넘어 가겠다. 사망을 주지 않고 그냥 통과하겠다. 그래서 히브리어로는 페사흐, 영어로는 Passover입니다.

 

우리는 이 유월절을 보면서 몇 가지 중요한 기독교 신앙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그 내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는 왜 피가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생명이 죽고 사는 이 중요한 일에 왜 다른것도 아닌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냐는 것입니다. 피가 왜 그렇게 구원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피는 곧 생명의 원천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생명은 심장에 달려 있다 그래서 심장이 멈추면 죽는다 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생명은 뇌에 달려 있다. 뇌가 파손되어 기능이 죽으면 사람은 죽는다 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 아니지요. 피를 돌게 하는 심장이 멈추면 피가 돌지 않아 몸의 기능이 다 멈춥니다. 또한 뇌가 파손되면 심장이 움직이도록 신호를 보내지 못해서 피가 돌지 못해서 죽습니다.

 

그런데 뇌든 심장이든 그 매개체가 피입니다. 마치 차로 말하면 엔진은 심장이고 그 엔진에 시동을 거는 운전자가 뇌라면 피는 연료입니다. 아무리 엔진이 좋아도 키를 꼽고 운전할 사람이 있어도 연료가 없으면 차는 시동도 걸을 수 없습니다. 여하튼 피가 생명과 직접적 영향을 갖고 있음은 두말 할 나위없습니다.

 

성경은 일찍부터 생명의 근원이 피에 있다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말씀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왜 피 인가? 그 두 번째 이유는 죄의 용서함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이 왜 죽는가? 죄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그 심판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생명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곧 생명이라 일컫는 피, 그 피의 기능, 피의 역할이 정상이 아닌 것이에요. 죽은 것이에요. 그러니 더 이상 그 죄로 인해 더러워진 피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면 그 피가 새로워져야 하는데, 그래야 죄로 말미암아 죽은 생명이 살아날 수 있는데, 죄의 해결함이 이루어지면 곧 새 생명으로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죄의 용서함이 이루어지면 새 피로, 다시금 새로운 생명체로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용서함을 받기 위해서는 생명의 근원인 피를 드려야 하는데 어떤 피인가 하면 죄악가운데 있는 사람의 피로는 안돼요. 순결한 피, 때묻지 않은 피, 죄 짓지 않은 피가 필요한 것입니다. 생명으로 생명을 살리는 것이에요. 그 죄 없는 자의 피만이 죄로 인해 죽은 생명을 다시금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갓 태어난 어린 아가입니까? 그럴 수 없어요. 그러면 이제 어린이를 제물로 바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도 네팔 힌두교에서는 12년에 한번씩 어린이를 죽여서 그 피를 돌로 만든 우상 앞에 뿌리고 땅을 적십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모습이 흠 없는 어린양의 피 입니다. 왜 어린양입니까? 그냥 소 하면 안되겠습니까? 어린양의 생명, 어린양의 피가 정말 죄가 없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까?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하여 모든 창조물, 자연 만물이 함께 타락하였고 고통 중에 신음한다고 했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았고 짐승세계는 서로를 잡아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야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선한 존재가 무엇인가? 없어요. 사람은 이미 죄 가운데 태어납니다. 해당이 되지 않아요. 짐승들 중에서 야수들,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포악한 모습도 죄성의 결과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가장 착하고 죄 없어 보이는 존재, 그것은 그냥 어른 양도 아니고 어린 아기 양이었습니다. 양순합니다. 착합니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제물들이 하나같이 양순한 초식동물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호랑이나 사자나 곰은 절대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월절에 어린양을 죽이고 그 생명된 피로 문지방에 바르라고 하셨는데요. 그 행위는 곧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를 감추고 덮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 들어오는 입구에 바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양이 정말 그 능력이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그 어린양의 피가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데 효력이 있다고 말한다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짐승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영향을 받아 자연만물도 다 죄 가운데 거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 죽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도 우셨다고 했습니다. 사망의 쏘는 능력 앞에 무능한 인생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신 예수님은 단순히 나사로 그 한사람이 죽어서 동료애로 우신 것이 아니에요. 그 정 때문에 우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우셨다고 하는 것은 그 죽음 앞에서 연약한 인생, 무력한 인생, 사망의 쏘는 것으로부터 우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의 운명이 가련해서 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하시는 긍휼하심이 많으신 예수님의 눈물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왜 예수님의 죽음이 고귀한가? 왜 주님의 죽으심이 복음이 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왜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표현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왜 우리가 찬송하기를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참 깊고 넓도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주의 보혈 능력있도가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찬송을 부르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의 피가 필요했던 것입니까? 죄 없는 사람, 피가 깨끗한 유일한 존재는 예수님 밖에 없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 10장 4절에 말씀합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무슨 뜻인가 하면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드려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입니다. 완전하지가 못해요. 그 짐승의 피가 완전히 순결하지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는 매일같이 제물로 제사를 드린 것이에요. 그 죄를 완전히 없앨 수 없었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그러기에 매일같이 드려야만 했었던 것이었습니다. 효과가 하루밖에 되지 않아요.

 

유월절 어린양의 피도 효력이 그날 밤 뿐이었습니다. 급하게 먹고 나가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11절 말씀을 찾아가 읽겠습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그런데 진정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구원의 효력은 하루가 아닙니다. 영원합니다. 오고 오는 세대에 그 효력이 영원합니다. 더 이상 피 제사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히 10:11)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4)

 

유월절의 감추어진 이 구원의 도를 배우면서 우리는 복음을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구원의 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이 구원의 지침, “어린양을 잡아 그 피로 문설주에 바르라 그러면 사망의 쏘는 것이 임하지 않고 구원을 입게 되리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엉터리 같은 얘기가 어디 있어? 난 못 믿어! 남들이 하든지 말든지 나는 못 믿어! 그러니 난 안해~!”

 

이것이 오늘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미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저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더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를 일도 없는 것이에요. 급하게 먹을 일도 없는 것이에요. 이미 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셨으니까요. 그저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하나,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것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예수님의 보혈의 복음은 오늘도 외쳐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복음방송을 통해서, 전도하는 사람의 입술을 통해서, 선교사를 통하여.........., 그러나 믿는자가 있는가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믿으면 구원이요, 믿지 아니하면 사망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와 여러분은 행복자입니다. 여러분, 도대체 어떻게 믿은 것입니까? 놀랍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이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이 땅에 전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한 선교사들과 믿음의 선조가 있었습니다. 가장 감사한 것은 그 복음을 우리가 믿은 것입니다.

 

이 특권, 이 감사를 가지고 죽음이 와도 두려움이 없는 이 복음의 능력으로 오늘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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