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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강해 17] 극한 상황에서도 놓을 수 없는 소망
운영자 2023-01-25 추천 0 댓글 0 조회 335
[성경본문] 욥기16:1-22 개역개정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3.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

4.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5.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

6.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

7.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8.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9.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10.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11.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12.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13.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14.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15.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16.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17.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18.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21.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극한 상황에서도 놓을 수 없는 소망

 

극한 고난 속에 있는 욥을 찾아온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아픔을 안타까이 여깁니다. 그리고 욥이 그 고난 속에서 회복하는 길은 그가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그러한 친구들의 조언은 욥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욥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그 모습은 욥의 일방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셨습니다. 욥기 23절에 하나님은 욥을 시험하려는 사탄에게 말씀하셨어요.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2:3)

 

온전하고 정직한 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은 의인이 당하는 고난이요, 고통인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강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오늘 말씀의 10절부터 13절까지의 내용을 묵상할 때, 우리는 죄가 없으셨으나 죄인과 같이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16:10~13)

 

죄 때문이 아니라 죄인으로 용서함 받고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베드로전서 222~24절에 말씀합니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2~24)

 

예수 그리스도의 그 한 없으신 사랑과 용서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헐어지고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값없이 받은 구원인 것입니다.

 

의인도 고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주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2:19)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어떤 슬픔과 아픔이 있으셨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생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사 예수 그리스도! 성자 예수님을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못 박게 하신 것입니다. 그때 아들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실 때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직접 나타나셔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는 빌라도 총독과 로마군인들과 이를 조장한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들을 심판하시고 멸하시면 좋았겠습니까? 그러지 않으셨어요. 인류의 그 원죄를 없애시기 위해서는 인류의 대표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제물되셔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슬프셨던 것입니다.

 

그 아픈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 그 순간에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렸으며 비가 쏫아져 내렸습니다. 아버지의 슬픔, 아버지의 아픈 마음이 그렇게 표현되었습니다.

한글개역 성경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2:19) 왜 아름답겠습니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휼할 수 있기 때문이요, 예수님의 숭고한 고난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교사로 나가기 전 희명병원에 원목의 모습으로 2년간 아침마다 출근하며 섬겼습니다. 환자들을 회진하고 위로하며 기도해 주었고 간호사들과 성경공부를 하였고, 수요일이면 병원직원들과 환우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행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병실마다 십자가를 다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 걸은 나무 십자가는 비인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 있는 십자가였습니다. 그 고난당하시는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환우들이 한결같이 말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나의 죄를 위하여 양손과 발에 대못으로 박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위로가 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예수님의 사랑입니까? 예수 때문에 우리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아픔과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음을 입는 것입니다.

 

오늘 욥기 16장은 엘리바스과 그의 친구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의 고난을 알지 못한다. 너희의 말은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욥의 서운한 마음이 고스란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함께 1절과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16:1~2) 그의 친구들은 재난을 주는 위로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가 내 처지에 있다면 내가 똑같이 너희에게 주는 말이 과연 위로가 되겠느냐?” 하고 반문합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16:4)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의 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고통받는 자가 곁에 있을 때 마치 하나님과 같이 심판주와 같이 함부로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하라고 질책하기 전에 먼저 위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헤아리실 것이라고, 그때를 함께 소망하며 기도하자고 위로해야 합니다.

 

친구에게 위로 받지 못하고 고통이 떠나지 않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 욥이 어떻게 합니까? 오늘의 영적 교훈입니다.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16:19) 그가 중보자를 의지합니다. 그 중보자는 하늘에 계시지만 신약시대에 이 땅에 친히 강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욥이 중보자를 의지합니다. 소망이 거기 밖에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가 또 고백합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16:21)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그가 누구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 오시기 전이었지만 중재자의 필요성을 이렇게 욥의 입술을 통해서 성경은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 되시고,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오늘도 우리가 그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 이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로마 캐톨릭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분개하고 종교개혁의 기치를 걸었던 마르틴 루터는 거대한 로마 교황청으로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15171031, 이 일로 인하여 마르틴 루터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수사 직분을 박탈당하게 되고 교황으로부터 파면당합니다.

 

이후로 15214월 당시 황제 카를 5세와 교황에 의해 보름스 재판에서 마르틴 루터는 교회의 권위에 불복종하였다는 이유로....,정죄당합니다. 죄인이 됩니다. 누군가가 그를 화형 시켜 죽여도 좋을 수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 때, 불안한 마음을 이기기 위해서,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도록,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의 내용이 급기야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되었고, 마침내 종교 개혁의 불길이 세차게 일어났습니다.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변혁으로 말미암아 중세시대의 막이 내리고, 근대 사회로의 출발과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르틴 루터는 찬송으로 지어 불렀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도다 그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 때 주께서 그의 편이 되어주셨고 그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교회는 다시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계시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의 소망이요, 구원이요, 의지할 분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 주님과 더불어 어려운 때를 이겨나가시는 저와 여러분이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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