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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01] 민수기 개관: 廣野(광야)에서
운영자 2022-05-10 추천 0 댓글 0 조회 730
[성경본문] 민수기1:1-4 개역개정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민수기 개관: 廣野(광야)에서

 

구약성경의 4번째 책인 민수기를 시작합니다. 지난 시간에 전도서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지난 주말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현 시대적 상황에서는 전도서보다는 민수기의 멧세지가 더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년도 우리 교회표어인 무너진 성벽을 다시 수축하는 해에 꼭 필요한 멧세지가 바로 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제목이 민수기(民數記)입니다. 백성의 숫자라는 뜻이에요. 영어로는 Numbers입니다. 숫자라는 뜻이지요. 단순히 해석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그런 뜻입니다. 민수기의 내용 중에 인구조사에 대한 부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책 제목을 民數記 글자 그대로 백성 자를 써서 백성의 수를 기록한 책으로 붙였습니다.

오늘 민수기 1장도 그렇지만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 숫자파악의 내용이 민수기 4장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본래 히브리어로 된 원전의 책 제목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민수기란 제목으로 책명이 정해지게 된 것은 기원전 300년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하면서 된 것이었어요. 그러면 그 이전 원래 히브리인들이 보던 히브리어로 된 원전에서의 책 제목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이란 불렀는가하면, 베미드바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히브리 성경의 제목이 그러합니다. 여러분, 베미드바르는 민수기가 어떤 책인가를 바로 보여주고 있느니, 광야에서입니다. 그 뜻이 광야에서!’ 그러면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동안, 이집트와 가나안 그 중간지대인 광야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책이 민수기입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민수기는 아주 분명한 신학적 메세지를 담고 있어요. 제가 원제목인 광야에서를 이렇게 바꿔서 말해보겠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며!’ 그러면 여러분 마음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나요? , 그렇지요? 광야는 우리 인생길 입니다. 이런 찬송이 있어요.

멀고 험한 이 세상 길 소망 없는 나그네 길김석균 목사님이 지은 노래죠. 그렇습니다. 인생은 광야길을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까지? 약속의 땅, 천국에 다다르는 그 날까지! 그러므로 민수기는 대단한 비유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척박한 땅, 물이 귀한 땅,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지 않아요. 돌봄을 받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매일 새벽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를 먹습니다. 때로는 메추라기가 떼로 몰려와 육식도 합니다. 물이 귀한 광야에서, 먹지 못하는 마라의 쓴 물을 지나고 나니, 열 두개의 샘과 70여 그루의 야자수가 있는 엘림의 오아시스를 경험합니다. 므리바에서는 바위를 치니 물이 터져나옵니다. 누가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광야길에 함께 하시며,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해가라고 명하십니다. 이것이 민수기가 전하는 가장 큰 메세지입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민수기 개관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민수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 제목대로 광야’, 우리가 먼저 이 광야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지순례를 통해 직접 그 광야에서 몇 일을 지내보면 제일 좋겠지요. 지난 2019년 교우들의 성지순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의 문제로 홍해를 건너 시내산으로 가는 광야길을 경험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앞으로 4년 뒤에 있을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에는 그 길도 경험해 보기를 원합니다.

 

모세와 함께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있습니다. 애굽은 고통과 슬픔의 장소였습니다. 그들의 자녀들 중 아들은 나일강에 던져졌습니다. 종이었습니다. 노역이 그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 눈물과 간청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했어요. 그래서 애굽을 떠났습니다. 주의 은혜였습니다.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신앙생활을 시작한 모습이 바로 이처럼 애굽을 떠난 자들과 같습니다. 죄와 사망과 저주의 사슬에 얽매여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인생길을 갑니다. 새로운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으로 마음이 새로워지니 인생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곁에는 같은 뜻을 품고 함께 그 길을 걷는 자들이 있어서 힘이 납니다. 이 한날도 이른 새벽을 깨우고 여러분 곁에 함께 기도하는 자들이 있으므로 힘을 얻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20) 가는 길에 누가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이 시간에도 성령으로 함께 계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애굽을 떠나고 보니 이스라엘 백성이 선 곳은 광야였습니다. 약속의 땅은 바로 코 앞에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먼 길을 가야합니다. 그런데 그 길은 광야길입니다. 강과 아름다운 나무들 그리고 열매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글자 그대로 ‘Empty Land’ 비인 들이에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경험합니다. “빈 들이 아니구나!” 왜 그렇겠어요? 필요한 것들이 공급됩니다. 매일 새벽 만나와 때로 메추라기와 반석에서 나오는 물이 있었습니다. 견딜만 합니다. 성경은 밝히 보여줍니다. 그들이 옷이 헤어지지 아니하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

왜 그렇겠습니까? 창조주요, 보존주요, 심판주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광야에도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에요. 세상을 떠나, 중심으로 주를 사랑하고, 주님 걸어가신 그 길을 따르는 자, 주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위해 충성하며 수고하는 자, 주님 주신 일터를 선교지로 알아 주의 나라가 그곳에도 임하기를 바라며 땀을 흘리고 수고하는 자에게, 우리 주님은 약속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의 출입을 지키시며, 우리의 영혼까지도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십시다.

 

광야 길은 힘듭니다. 그러나 목표를 정하고 가는 광야길은 언제고 소망에 가득 차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길입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고 헤매는 무리가 아니에요. 주의 종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그 길을 안내합니다.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정처없이 인생길을 걷는 자들이 많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몰라요. 그러므로 같은 광야길인데 그들은 목표가 없으니 그 영혼이 방황하고 유리합니다. 난관이 오면 다시금 목표 지점을 바라봐야만 일어서서 그 길을 향해 똑바로 걸어갈 수 있는데, 헤매다가 지치고 상하고 주저앉고 결국 포기합니다.

일찍이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선한목자를 따르는 자는 인생이 포기가 안됩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가 안되요. 왜 그렇겠습니까?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기도할 적마다 힘주십니다. 약속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시고, 그 말씀 부여잡게 하시니, 목표가 보이는 거에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 저기에 있구나!”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일어서게 하시고, 힘도 주시고, 다시금 걷게 하십니다. 찬송도 부르게 하십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도자 한 밤을 새웠네....”

 

그런데 기도하지 아니하면, 그래서 믿음이 떨어지면, 그래서 목표의식이 불분명해지게 되면 유혹이 닥쳐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유혹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민수기를 읽어나가면서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어째 저럴까? 어째 저럴까?” 그런데 그 모습에서 때로 우리 자신의 모습도 보입니다. 어떤 유혹이겠습니까?

 

이미 떠나온 애굽의 삶을 잊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리워하고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과 시험이 완전히 마음을 헤집어 놓습니다. 민수기 11장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11:4~5) 그런가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서 죽은 것이 낫지 아니하냐?

 

그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의 탐욕을 품으매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세상사람들 모습보면서 덩달아서 영향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의 자존감도 사라지고, 가야할 목표 지점도 흐려지고..., 그저 세상처럼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이어 주시는 말씀이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4:24~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흔들리겠습니까? 저 멀리 있는 그래서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약속의 땅보다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현실, 사라지고 말 영원하지 못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내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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