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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28] 내 영혼의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운영자 2021-10-20 추천 0 댓글 0 조회 541
[성경본문] 신명기19:1-7 개역개정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4.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5.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6.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7.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 영혼의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아갈 때에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정신은 십계명에 나타나 있으니.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었습니다.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할 일은, 하나님 사랑이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마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성일로 지키라.” 하나님과 나와의 수직적인 관계가 똑 바로 서게 되면, 수평적인 관계 즉 이웃사랑도 제대로 될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제 수평적인 관계, 사회에서 어떻게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가? 문제가 터질 때에는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법을 제정하고 있습니다. 힘이 없어 강한 자에게 억울하게 당할 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사람의 심성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성이 발동하여, 남을 것을 빼앗고, 또 빼앗기지 않고자, 서로 다툴 때에 그 과정에서 사람까지 죽일 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 참 심각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구약시대에 근동지방의 국가들은 동태복수법에 근거하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였습니다. 동태복수법이 무엇인가하면 당한대로 갚는다고 하는 법 실행입니다. 예를 들어 남의 집 소를 훔쳤으면, 그 훔친 자의 소를 가져올 수 있으며, 상대방이 자신의 가족을 때렸으면 그 때린 자의 가족을 그마 만큼 때려도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당한만큼 그에 상응하는 응징이나, 응징을 하지 못할 상황이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도 갚지 못하면 피해를 준 집의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1921절에 보시면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무슨 말씀이겠습니까? 받은 만큼 되갚아 주라. 아주 엄중하지요. 그래야 범죄하지 않고 사회가 질서가 잡힐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말씀은 살인의 경우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6절에 보시면 피를 보복하는 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가족 중에 누가 한 사람이 살해를 당하면 반드시 죽인 자를 찾아 죽여야 했습니다. 이 일로 죽은 자의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복수의 허락을 받고, 살인자를 찾아 죽여야 했어요. 그것이 합법적인 모습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 피의 보복자는 죽임을 당한 자가 받을 유산을 대신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필리핀 산지족인 아이타 부족 가운데 복음을 전할 적에, 그들도 이 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보통 현대 발전된 문화와 상관이 없이 산속에 40여 가정이 씨족을 형성하고 살고 있었는데, 가족 중에 누군가가 살해를 당하면, 반드시 복수해야만 그 죽은 영혼이 자유함을 입고, 그 영혼의 창조주인 아뽀 마말야리 에게 돌아간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복수할 자가 멀리 도망쳐서 잡을 수 없으면, 여하튼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하는 자는 보통 그 지역에 들어온 외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그곳을 찾은 한 선교사가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함께 제자 훈련 성경공부하는 형제들이 저에게 얘기를 해 주는 것이었어요. 아이타 부족 간에 살인사건이 나면 절대 산속에 출입하지 마세요. 죽을 수가 있어요.” 그 조언을 제가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제 아내가 그들과 함께 살았던 7년 동안은 감사하게도 한 번도 살인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살인의 의도가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하였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에요.

 

이 상황에 대해서 율법으로 알려 주시는데, 그 상황에서는 이 동태복수법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적이 있으니 복수에 복수가 반복되는 피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였어요. 이 점이 고대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성경의 율법이었습니다. 그 율법에는 인간생명존중 사상인권존중의식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피성을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과실로 사람을 죽게 한 자들이 피의 복수로부터 피할 곳을 마련해 주라는 것이었어요. 48개의 성소 중에서 세 곳에 도피성을 지으라 명하신 것입니다.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피의 복수로부터 피신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 한 예가 오늘 말씀에 소개되고 있어요. 5절과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그로 죽게함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6.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혐원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치 아니하나 두렵건대 보수자의 마음이 뜨거워서 살인자를 따르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미쳐서 죽일까 하노라(19:5~6)

 

도피성의 문어귀에서 그 성읍의 장로들이 그 사연을 듣고 타당하면 그 안에 들어가 피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피의 보복자가 그 사실을 알고 쫓아와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야말로 안전한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되었을 때 그 피고는 살해당한 자의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넘기어져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즉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는 도피성에 피한다 해도 그 죄 값을 면치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도피성으로 피난한 사람은 그 안에서 살아야 했어요. 밖에 나갈 수 없어요. 자유가 그리워 몰래 나가면 피의 보복자에 의해 잡혀 죽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대제사장이 사고로 또는 연로해서 죽게 되면, 자유의 몸이 되어 자기성읍,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왜 대제사장이 죽으면 살인자가 자유의 몸이 될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심오한 속죄사상을 발견합니다.

 

대제사장은 죄와 죄의 속죄, 즉 범한 죄를 용서함에 있어서,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죽음은 살인자의 살인죄를 속죄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어요. 살인자의 죄를 대신하여 대제사장이 죽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 속죄사상은 사람들의 개인적으로 범한 죄를 짐승에 전가하고, 그 짐승을 죽여 그 피를 제단에 뿌려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던 모습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국가적, 민족적 죄는 영적인 면에서 민족의 대표자가 된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 죄인들이 용서함을 받는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는 이 구약의 도피성 법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과 속죄하심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고, 죄의 사슬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하늘나라 천국본향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어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오늘 성경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도피성의 얘기를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에요. 그것은 바로 이 시대의 도피성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혼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련과 극복을 위한 찬송 중에, 337장이죠.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여러분, 우리 인생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도 않을 때가 참 많아요. 선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양심이 있는 모든 자들의 소원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다양한 상황에 연루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는 절제하여 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양심에 꺼리는 상황이 이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세상이 악한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후로 세상이란 저주 받은 곳이요, 공중권세 잡은 사단의 통치영역이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사회 구조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세상 삶이라는 게 그렇다는 것입니다. 풍조라고 말하기도 하고, 세상문화라고 말하기도 하고, 넓은 문, 넓은 길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적당히 하면 된다고 사단은 속삭입니다. 적당히 거짓말하고,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챙기면 된다고 하는 생각이, 마음을 어둡게 하고, 이러한 일이 반복이 되다보면, 이 세속적 기준이 상식이 됩니다.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문제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거룩성이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이 내주하는 심령은, 언제고 하나님의 성품을 추구하게 되어있는데, 거슬러 행하게 되니 마음에 평강이 사라집니다. 죄로 인해 시작된 마음의 근심, 염려는 상처가 되고, 감염이 되어 거룩성은 점점 죽어갑니다. 마치 간경화의 모습이죠. 점차로 굳어집니다. 본래의 기능이 사라집니다. 이 죄로 인해 죽어가는 양심을 어떻게 살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도피성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를 씻기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완전하고 안전한 피난처가 이 세상에서는 그 어느 곳에도 없어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어주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전과 위로가 있을 뿐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위로와 평안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범한 어떤 죄도 우리가 주 앞에 나아가 회개할 때에, 주께서는 사랑으로 덮어주시고 용서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이지요.

 

이 용서하심을 통해, 진정한 안식과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기를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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