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시편 강해 47]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주신 꿈으로 이겨라
운영자 2021-03-04 추천 0 댓글 0 조회 811
[성경본문] 시편43:1-5 개역개정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주신 꿈으로 이겨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43편은 어제 묵상한 42편의 시와 연결된 시라고 대부분의 성경해석자들은 해석합니다. 그 이유로는 후렴 부분이 같은 거에요. 5절 말씀이 그러합니다. 42장과 43장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43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이 후렴에서 시인의 고백처럼 이 세상에 낙심되고 그러기에 불안이 먹장구름처럼 마음을 뒤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좌절하고 절망하며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말 것이에요. 그런데 오늘 믿음이 강한 시인은 똑같은 그 상황에서 어떠한 자세를 갖습니까? 자신을 꾸짖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낙심으로 불안함으로 차는 것을 허락지 않아요. 자세히 보십시오. 435절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그 처지에 있는 자에게 주시는 권면이 아니에요. 자신이 자신을 꾸짖는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하는가?”

 

사람들 중에는 자기연민이 강한 사람들이 있어요. 일이 계획된 대로 안 되고 그 결과로 실망스럽고 삶이 곤고해 질 때에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한탄하며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여 불쌍히 여기게 되니, 나는 원래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놈이었어! 사업은 무슨 사업, 그냥 월급쟁이로 있었어야 하는데~!” 선교지에 전문인 선교사 중에도 있습니다. 내가 미쳤지! 왜 그 좋은 직장 놔두고 선교한다고, 이렇게 타국에 와서 고생을 하다니, 돌아갈 수도 없고, 내가 미쳤어~!”

 

혹 믿지 않는 남자 친구와 사귀면서 믿지 않는 집안에 시집 올 때에 그런 생각 가질 수 있어요. 내가 반드시 예수 믿게 하리라 그런데 거꾸로 새댁이 예수 믿는다고 집안 망하게 되었다고 핍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에요. 자신의 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남편도 시댁식구 편에 서서 아내를 공격해요. 그러면 좌절하기 십상입니다. 내가 잘못해도 크게 잘못 생각했어. 그런 능력도 없으면서, 눈에 콩까지가 씌었지! 진작 친정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자기연민에 빠져서 후회막급이요, 좌절감에 세상이 싫어집니다. 의욕도 없어요. 그냥 그렇게 패배감에 얽매여서 무능력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다릅니다. 이러한 상황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 절망감이 엄습하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2절에 시인의 고백이 그것이에요. 함께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쉽게 표현하자면 하나님, 나는 의롭게 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나는 너무 억울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십니까? 내가 너무 슬픕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말 마음이 힘들고 어려우면 이 시의 주인공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하소연 할 수 있어요. 왜 없겠어요. 그럴 때 있어요.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눈물로 하소연하고 토설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날들이 계속되면 이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 머물러 침잠해 있는 자신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되니, 믿음의 사람은 5절에서처럼 스스로에게 외치는 거에요. 이제 이만큼이면 됐어. 이제 나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해! 그가 나타나 도우실 것이야! 그래서 나는 다시금 승리의 찬송, 감사의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이야!”

 

믿음이 있는 자는 억울한 일, 예상에서 빗나간 일, 특히나 선을 행하면서도 당하는 어려움이 있을 때에 이렇게 다시금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종래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을 흔드는 이유가 있으니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꿈, 그리고 그 꿈에 대한 강력한 믿음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믿음이 된 자는 결국 일어납니다. 남 때문에 억울해서 원통해 하고, 또는 상황이 그래서 그랬다느니 이런 저런 핑계거리도 찾지 않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심어준 꿈을 결코 놓지 않았기에, 그처럼 형제들에게 노예로 팔려가고, 보디발의 부인으로부터 모함을 받고, 억울하게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결코 그 꿈을 놓지 아니하니 절망과 좌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날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소망 중에 달려갑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비젼, 그 꿈 때문입니다. 4절 말씀이 늘 가슴에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깜깜한 밤, 험산 준령, 눈물의 골짜기를 걸으면서도 믿음으로 그 꿈을 놓지 아니하니, 그 모든 어려움이 기쁨이 회복되어 이 4절 말씀처럼 주의 제단에 나아와 감사로 기쁨으로 찬송하는 그 날이 오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국 전쟁당시 한국에 선교사로 온 루벤 토레이 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36년간의 중국사역을 마치고 65세의 나이에 새로운 비전을 품고 한국 땅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그가 중국에서 사역을 할 때에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정신을 잃게 되었는데, 수술을 받고, 병상에서 깨어나고 보니, 한쪽 팔이 없어졌습니다. 잘려 나간 것이었습니다. 당시 의학실력으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내 자신이 그런 처지에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주의 나라 위하여 선교사로 헌신하고 머나먼 타국에 와서 수고를 아끼지 아니했는데 주님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하늘이 캄캄해 지지 않을까요? 그 마음을 어떻게, 어떻게 추스를 수 있을까요?

 

며칠간 고통의 밤을 지낸 후 토레이 선교사는 그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그는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신뢰하며 고백했습니다. 아직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어서 하나님이 내 목숨을 살려주신 거야. 지금까지 두 팔로 해온 모든 일들을 한 팔로 하는 법을 배우면 돼.”

 

그가 병상에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한쪽 팔을 가져가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두 팔을 주셔서 잘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저의 한쪽 팔을 가져가셨음을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니까 곁에 그를 아는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교통사고 당해서 팔이 하나 날라 가더니 정신도 날아가 버렸다. 팔이 없어졌는데 감사하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그래도 끝까지 이 루벤 토레이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팔을 주신 것도 감사하고 팔을 가져가신 것도 감사하다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또 다시 기회를 허락하셨어요. 미국으로 돌아가 재활치료를 받던 그는 의수와 의족 만드는 법을 직접 배웠습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전쟁터에서 팔과 다리를 잃은 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 나라로 자원하여 가게 되었으니 바로 6.25전쟁 당시인 1952년에 미국장로교회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한국 땅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재활병원을 시작하여 의수족을 만들어 보급하며 예수님을 전달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재활의학을 시작했습니다. 전쟁 중 팔 다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인조팔과 다리로 재활하는 일로 주의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인조다리를 갖고 재활하게 된 한 사람은 고향마을을 송두리 채 주님께로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크고 귀하게 쓰임 받은 그는 자신이 왜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잃게 되었는지,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중국에서 팔을 잃지 않았었으면 이렇게 한국에 와서 팔다리 잃은 사람을 사랑하고 의수족을 만들어 줄 수 없었을 텐데....,” 그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는 71세까지 한국에서 주의 사랑을 전했으니 그 동안 그의 도움으로 의수와 의족을 갖게 된 사람은 무려 450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루벤 선교사 부부가 대한민국을 떠나는 날의 모습을, 그의 딸 루벤 클레어 존슨이 쓴 루벤 토레이 선교사의 전기내 사랑 황하를 흘러(좋은씨앗, 2009)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김포공항에서는 많은 성도들이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찬송을 부르며 언젠가 주님 품에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환송했다.”

 

그리고 그는 197022383세이 일기로 하늘 아버지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런데 루벤 토레이 선교사님의 이 땅과 이 민족을 사랑하는 삶은 자신만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선교사의 자녀로 자라난 아들이 또한 한국민족을 자신의 민족처럼 사랑으로 섬겼으니 그의 이름이 루벤 아처 토레이, 우리에게는 대천덕 이라는 이름으로 익히 알려져 있지요. 강원도 태백 예수원에서 한국의 복음화와 영성훈련을 위해 평생 섬겼습니다.

 

루벤 토레이 선교사님, 그는 중국선교를 감당하는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교통사고와 팔을 절단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선교사의 비전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꿈이 그를 그렇게 살려내고, 한국 선교역사에 길이 남을 주의 사랑의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억울한 일, 이해가 되지 않는 일, 너무 힘든데 어디에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일로 눈물이 앞을 가릴 때에, 여전히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나아갈 곳이 있으니 주의 전이요, 우리의 마음을 둘 곳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품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내 맘에 주신 꿈과 소망을 믿음으로 잡으시면 주께서 일으켜 세우십니다. 시편 42편과 43편에 세 번이나 후렴으로 등장하는 성경구절, 435절을 읽고 마음에 담으시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시편 강해 48] 선을 행해도 부당히 고난을 받을 때 운영자 2021.03.05 0 703
다음글 [시편 강해 46]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운영자 2021.03.03 0 580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0
  • Total201,323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